'헌재'는 현재 '위헌상태'? '이럴수가!'

직접 안 봐 확신 못하는 건 법관의 당연한 덕목...이념적 선명성이 오히려 정치적 중립 보장

9일 국회 본회의가 조용환(53ㆍ사법연수원 14기)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선출안을 부결해 헌법재판관 공백이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법조계 안팎에선 정치권의 공포가 헌법재판소를 위헌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헌법은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지금 헌재는 ‘위헌’상태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물론 위헌법률, 권한쟁의, 헌법소원 사건 등의 선고는 7인 이상의 헌재 재판관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헌법정신에 입각해 법률을 저울질해야 할 헌재가 9인의 합의제라는 헌법 정신을 벗어나 있다는 데 우려가 뒤따른다.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 창립 이래 초유의 헌재재판관 선출안 부결은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시동이 걸렸다. 대통령ㆍ국회ㆍ대법원장이 각 3명씩 갖는 지명권으로 야당의 추천을 받아 후보가 된 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해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소행이라고)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기 곤란하다"고 한 발언 등이 문제가 돼 여당의 거부권 행사를 불렀다. 이른바 정치판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그러나 “‘직접 보지 않아 확신이란 표현을 쓰기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조 후보자야말로 진정 법관의 이상적 모습”이라 평했다. 법관은 늘 과거의 시점을 머릿속에 그려야 하는 직업이다. 이미 ‘과거에’ 발생한 법적 갈등은 결국 다수 당사자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재구성해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제시할 수 있는 상식적인 답변을 정치권이 정치적 성향이 담긴 것으로 풀이했다는 이야기다. 학계의 모 인사는 오히려 “재판관의 이념적 선명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있어 판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보다 치밀한 법적 논증을 꺼내 놓게 된다는 설명이다. 헌재는 당장 ‘위헌상태’해소가 급하다. 헌재엔 현재 간통, 낙태, 건강보험재정통합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지닌 이슈들이 9번째 재판관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 등 주요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재판관의 정족수를 6인으로 하는 가중다수제를 채택해 단 한명의 의견만으로도 결론을 달리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강국 헌재소장도 최근 “견해 대립시 단 한명의 표가 중요해 새 재판관의 의견을 듣고자 결정을 미루기도 한다”며 선출안의 빠른 가결을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당분간 ‘위헌적인’ 8인 체제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본회의 표결이 부결됨에 따라 야당은 새 후보자를 추천해 인사청문회 절차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잔여 임기와는 별도로 사실상 4월 총선 체제 돌입으로 오는 16일 종료되는 2월 임시국회를 끝으로 18대 국회는 문을 닫고, 19대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수개월 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헌재 안팎에선 정치권의 정치 판결에 대한 도를 넘은 두려움이 사상 초유의 헌법기관 ‘위헌상태’를 장기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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