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기업 임원과 저녁을 같이 할 자리가 최근 있었다. 연말을 지나면서 한창 바빴던 얘기와 올해 불경기에 대해 떠들다가 문득 설 명절로 화제가 넘어갔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명절만 되면 여기저기 선물을 보내기 마련. 올해는 경기도 안 좋고 예산도 부족한데 무슨 선물을 보내야할지 모르겠다는 게 그 임원의 푸념이었다. 그때 동석했던 후배기자가 엉뚱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송아지 한 마리씩 사서 보내시죠. 한 마리 만원밖에 안한다니까 1000만원만 쓰면 배송비 포함해도 500~600명한테는 보내겠네요. 10만원짜리 갈비세트 보다 훨씬 낫죠."어이없는 얘기에 일행은 모두 실소를 터뜨렸지만 문득 내 눈은 벽에 걸린 메뉴판에 가 있었다. 고기질이 좋기로 유명한 여의도의 그 고기 집 메뉴판에는 '한우 등심 1인분에 3만8000원'이라고 선명히 적혀 있었다. 1인분의 무게는 불과 150 그램(g) 이었다.아버지가 대학에 가던 시절만 해도 시골 농가에서는 소를 팔아 대학등록금을 마련한다고 할 정도로 한우는 큰 재산이었다. 요즘의 차 보다도 더 중요한 대접을 받았던 게 사실. 이 귀한걸 먹으려니 소고기는 늘 비싸고, 귀한 식재료라는 게 우리나라 음식문화속의 불문율이었다.그러던 소 값이 땅에 떨어지다 못해 산지에서 송아지 한 마리 값이 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서울의 고기집에서는 여전히 비싼 가격에 소고기를 먹어야 하는 불편한 진실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소 값의 가장 큰 문제는 '수요 예측에 실패한 정부'와 '복잡한 유통 체계' 두 가지로 요약된다.수입소고기라는 대체 상품이 등장한 상황에서 생산하는데 고비용이 필요한 소고기에 대한 개체 조절이 미리 됐어야 함에도 정부는 손을 놓고, 농가는 대책 없이 숫자를 늘렸던 게 일차적인 패착이라 할 수 있다. 소 한 마리 키우는데 6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고, 사료 값은 날로 치솟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수입산 소고기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잠식해 들어갔다. 비싼 한우는 점차 밥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됐다. 숫자를 줄여 가격방어에 나서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 총대를 메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소고기가 소비자들의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유통과정은 그대로다. 거간꾼이 사서 도축 하고, 가공을 하고 도매상을 거쳐 소매상까지 가는 과정에서 소는 몸통이 토막 나지만 가격은 되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 누가 불을 떨궜는지만 따지다간 다리를 홀랑 데일 판이다. 정부가 농가의 요구대로 소를 사들이던, 북한으로 보내던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소를 키우겠는가?이초희 기자 cho77lov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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