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기간 중에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 G20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사공일 무역협회장이 기자들과 나눈 말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북한이 무모한 행동을 한다면 정상회의의 이슈가 경제에서 정치로 바뀌고 세계의 시선이 쏠릴 것 아닌가. 정상들이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선언문이라도 내놓는다면 북한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는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 상대는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예측불가의 존재라는 점이다. 실제 G20이 열렸던 11월11~12일 한반도는 평온했고, 회의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한반도 어디에도 도발의 징후는 없었다. 적어도 사공 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을 때까지는 그런 듯 보였다. 결과를 말하자면 결론은 성급했고 판단은 빗나갔다. G20 회의가 열리고 있던 그 순간 G20을 겨냥한 북의 '1차 공격'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의도는 분명하고 공격은 노골적이었다.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던 날 북한 영변에서는 미국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에 놀라고 있었다. 북한이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20개 국 정상들이 신경제 구축을 다짐하는 날 북한은 전 세계를 향해 또 한번 핵 위협 공세를 편 것이다. 잔치 판을 깨는 절묘한 택일이었다. 그로부터 11일째 되던 11월23일 오후 2시34분, 북한의 '시간차 2차 공격'이 개시됐다. 이번엔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였다. 연평도 포격이다. 무차별 포격에 꽃다운 해병대원 2명이 스러졌고, 민간인 2명도 숨졌다. 주민들은 때 아닌 피난길에 올랐다. 북한의 포탄은 연평도만을 겨눈 게 아니다. G20은 중요한 표적이었고 더불어 G20 성과에 한껏 고무됐던 이명박정부의 심장을 때렸다. 그 증거는 수치로 명확하게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G20 정상회의에 힘입어 11월 둘째 주 47.4%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42.7%로 급락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49.0%)는 실망감이 분노와 함께 표출된 결과다. 북한의 해안포는 'G20을 잘 치렀다'는 호의적 평가(71.6%)를 그렇게 2주만에 박살낸 것이다.5000만의 가슴에도 포흔이 깊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영토 공격에 소스라쳤고, G20 개최국의 성취감과 자긍심은 일순간 상실감과 분노로 바뀌었다. 첩보를 뭉개버린 안이한 대처, 허둥댄 초기 대응, '보온병 포탄'과 '폭탄주' 논란, 논두렁에 처박힌 대응 포탄…. 그런 모습을 접할 때마다 국민들의 상처는 다시 욱신거린다. 또 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포탄은 작렬했다. 북한 자신의 머리 위다. 무차별 도발에 분노하는 거친 목소리가 포탄이 되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확전되더라도 강력한 군사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44.8%에 달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3%가 '연평도 사태에서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해야 했다'고 답했다. 전에 없던 강경여론이며 분노이자 적개심이다. 만의 하나 다시 도발을 꿈꾸고 있다면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 연평도를 향해 발사한 폭탄이 이처럼 스스로의 목줄을 죄는 부메랑이 됐다는 사실을. 포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장례가 오늘 치러졌다. 피난 온 연평도 주민들은 여전히 찜질방 신세다. 서해에서 사격훈련이 시작됐다. 북은 다시 위협을 한다. 모두 아프다. 연평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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