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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무연고사 리포트] 이웃도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수정 2021.09.30 15:10입력 2021.09.17 13:00

<5>그들이 사는 세상

서울 중구 중림동…발길 끊긴 집 많아
"90살 넘은 할머니 혼자 지내는데
왜 홀로 사는지 이런 건 잘 몰라"

부산 서구·중구 산동네도 주거 취약
몸까지 노쇠한 고령 무연고자들
높은 경사 비탈길·계단이 장애물

서울 중구 중림동의 골목길에선 오래된 주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이정윤 기자 leejuyoo@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고형광 팀장, 유병돈 기자,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가족 없이 홀로 지내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아침과 오후가 되면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니시던 분이었는데 보이질 않네요. 돌아간(돌아가신) 건 아닌지…"


골목마다 경사 급한 비탈길이 나 있고 허름한 주택들이 가득한 서울 중구 중림동의 산동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연고 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곤 할머니 한 분에 대해 설명했다. 동생들 시집보내고 장가들게 하느라 자신은 80세가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곤 한다. 매일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는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진 건 8개월 전쯤. 전해 들은 소식도 없고 이름과 나이, 주소도 알지 못해 할머니가 다니던 길에 자꾸 시선이 가고 이사를 간 것인지, 세상을 떠난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다고 했다.

아시아경제 전수조사 결과, 해당 지역의 1년 평균 무연고 사망자 발생 건수와 2020년 인구를 토대로 10만명당 무연고 사망자 수를 계산한 무연고 수치는 서울 중구가 30.99로 가장 높았다. 서울 중구에서도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꼽히는 중림동을 찾았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집들이 쉽게 발견됐다. 우편함에 '수도요금 청구서'가 쌓여 있고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대문에 덕지덕지 붙은 집도 있었다. 담벼락에 '철거'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은 가족 없이 외롭게 지내는 사람에 대해 묻자 "잘은 모르는데"라는 말을 가장 먼저 내뱉었다. 70년 넘게 중림동에서 거주했다는 정모씨(89)도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90살 넘은 할머니가 있는데 가족 없이 혼자 지내더라구. 그런데 왜 혼자 사는지 이런 건 알질 못해."


부산 서구 초장동에 위치한 산동네. 사진=정동훈 기자 hoon2@

서울 중구 다음으로 무연고 수치가 높은 부산 서구와 중구에도 산동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산벽도로를 낀 비탈길에 노후 주택과 빌라·쪽방 등 주거 취약 공간들이 밀집했다. 산벽도로는 경사지까지 개발이 이루어지며 가장 위쪽에 위치한 도로를 의미한다. 개항기에는 부두노동자들이, 한국전쟁 이후로는 피난민들이 살아갈 터전을 찾아 부산 서구 초장동과 아미동, 부산 중구 대청동 등으로 모여들었고 산동네가 만들어졌다. 현재는 주로 고령층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전히 타지역보다 주거비가 저렴하다고 한다.

부산 서구 초장동 일대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들이 많았다. 빈집 문 앞에는 '이 부근의 집을 구합니다. 주택. 빌라. 상가'라고 적힌 작은 전단지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은 있었다. 연고 없이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빈집 사이 좁은 골목에서 만난 김상호씨(83)는 인터뷰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여기는 하루에 한 명 사람도 보기가 힘들다"며 "누가 이 산비탈을 찾아와서 말동무라도 하겠나. 아들놈 하나 있는데 연락하고 지낸 지 한참 됐다"고 말했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묻는 말에는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


19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황모씨(93)는 2년 전 무연고자가 됐다. 50년도 더 된 과거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5형제를 키웠다. 하지만 서울 어딘가에 거주한다는 것만 알 뿐 자녀 2명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나머지 3명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같이 살던 막내아들이 '술 때문에 그렇게 되고' 나라에서 나오는 돈 받으며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의 한 빈집에 출입금지 문구가 설치돼 있다. 사진=유병돈 기자 tamond@

노인들에겐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은 경사의 계단과 골목길이 다른 이와의 교류를 막는 장애물로 다가온다. 눈이나 비가 내리면 꼼짝없이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자칫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서다. 5년 전 아미동으로 터전을 옮겼다는 김모씨(88)씨에겐 유일한 이웃이었던 친구가 수년 전 세상을 떠난 뒤로 오롯이 홀로 지내고 있다. 계단을 지나면 다른 이웃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는 적적하고 외로울 때면 집 앞 골목으로 나와 3시간이고 4시간이고 바깥 풍경만 바라본다고 한다. 비탈길에 가로막혀 서서히 무연고자가 돼 가는 것이다.


초장동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62)도 "한 달에 3~4번은 앰뷸런스 소리가 울리는데 그럴 때마다 '혼자 지내다 돌아가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부분 지병이 있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근처에 거주하는데 이동하기도 힘든 비탈길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족뿐만 아니라 주민들 간에도 왕래가 드물다"고 전했다. 이러한 거주 환경은 무연고 사망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산동네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은 무형의 이웃 간 관계라든가 커뮤니티 조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나쁜 주거 환경은 사회적 고립의 중요 요소가 될 수 있고 고립될 때 무연고 사망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산 중구 대청동 산동네. 한 주민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이정윤 기자 leejuyoo@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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