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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종교 시대]③'위기청소년' 찾아 버스 모는 신부 "폭력·性·우울에 방치된 아이들 건져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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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A지T 소장 서울대교구 은성제 신부 인터뷰
2019년부터 거리의 '위기청소년' 만나
방치되어 폭력·성(性)문제·정서불안 多
일단 놀고 먹여…마음 열면 속 이야기 술술
"긍정 변화 많아…대학생·직장인 되고도 계속 연락"
민원에 장소 여러 차례 옮겨…부정적 시선 안타까워

편집자주대다수 종교에서 예비 성직자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 가치의 영향도 주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종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을까요. 아울러 지금 시대에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속사정을 들여다봅니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각각 수유역과 성신여대 인근 도로에는 주황색 '서울A지T' 버스가 등장한다.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에서 운영하는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로 내부는 편안히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졌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간이자 속마음을 터놓는 공간이다. 버스를 찾는 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거리의 아이들. 서울A지T 소장인 은성제 신부를 비롯해 4명의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6명을 포함해 매회 10명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는다. 본래 명동성당 인근에 자리 잡았으나 교통비조차 부담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접근성이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리의 아이들을 지칭하는 여러 호칭이 있지만 은성제 신부는 이들을 ‘위기청소년’이라 부른다. 폭력, 성(性) 문제 등 여러 위기 상황 놓인 위기청소년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은 신부 사전에 ‘적당히’란 없다. ‘끝까지’를 강조하는 은 신부에게 위기청소년 지원 사목에 관해 물었다. 사목은 사제가 교회의 뜻에 따라 특정 직무로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탈종교 시대]③'위기청소년' 찾아 버스 모는 신부 "폭력·性·우울에 방치된 아이들 건져내야죠" 거리의 '위기청소년'을 돕는 서울A지T 소장 은성제 신부. [사진=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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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부터 5년째 사목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나.

▲사실 이제야 조금 틀이 잡혀가고 있다. 첫 3년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 많았다. 버스 구입부터, 버스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예산의 35%를 교구에서 지원받고 나머지는 후원에 의지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예산 마련에 어려움이 컸다.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목활동을 벌이면서 매주 100여명의 청소년과 함께하고 있다.


- 위기청소년을 돕는 일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나,

▲버스를 길에 대고, 저와 선생님, 봉사자 10명가량이 둘씩 짝을 지어 학생들을 찾아다닌다. 간단한 간식 꾸러미와 안내지를 주면 대체로 따라온다.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까. 그중 절반은 자퇴한 친구들이다. 대다수가 가출 경험이 있고 그중 일부는 현재도 가출 상태다. 대개는 부모가 늦게까지 일하는 등의 이유로 관심 밖에 놓인 아이들이다. 부모와 떨어져 완전히 고아처럼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은 10% 정도다. 보통 삼삼오오 몰려오는데 오면 무조건 먹이고 놀게 한다. 차에 노래방 기기도 있다. 아이들은 ‘이 선생님은 내 사람’ 정도의 친밀감을 형성해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탈종교 시대]③'위기청소년' 찾아 버스 모는 신부 "폭력·性·우울에 방치된 아이들 건져내야죠" A지T 버스 안에서 활동가 선생님과 청소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서울A지T]

- 아이들 마음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대개 한 번 오기 시작하면 매주 오는 편이다. 하루 만에 다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고, 4~5개월 걸리는 친구도 있다. 자기가 소년원에 다녀왔고,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 아이들은 보통 어떤 어려움을 안고 있나.

▲보통 자해 경험이 한 번씩은 다 있다. 정신적으로도 불안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병원은 가기 싫어하면서도 정신과 약을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병원 동행 및 의료지원을 하기도 하고, 폭력이나 성(性) 피해가 있는 경우 (비공개) 쉼터를 안내하기도 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오는 경우 미혼모 시설을 안내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내켜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설득해도 결국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성매매로 돈을 버는 친구들도 있는데, 사실 본인도 그런 삶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대개 우울감과 절망이 몰려들 때 버스를 찾아온다.


- 사람이나 상황이 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긍정적 변화는 얼마나 일어나는지.

▲다행히도 꽤 많은 편이다. 본래 집이 부유했으나 아버지 사업 실패로 부모가 이혼하고 거리로 내몰린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성매매 유혹에도 빠지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희와 만나면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위기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다. 2018년 당시 17살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에 잘 다니고 있다. 이런 경우는 꽤 많다. 파티시에를 하거나, 메이크업을 하고, 기업에서 회계일을 맡은 친구도 있다.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많다.


- 현재 사제로서 위기청소년을 만나고 있는데, 처음 사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고등학교 때 어려운 가정사가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마음에 큰 변화를 겪었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고민했는데, 그게 사제라고 생각했다. 결심 이후에도 나름의 자기 포기 과정이 있었다. 당시 나름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기에 일반대학을 나와 사회생활도 좀 하고, 연애도 좀 하다가 나중에 (사제의 길을)가려고 했다. 근데 어느 날 성경 속 사도 바울로의 삶을 통해 제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이후 1995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1997년 군입대, 2004년에 서품을 받고 지역 성당에 있다가 2008년 군종사목(대위)으로 재입대했다. 군(軍)사목으로 백령도와 해병대 2사단 등에서 근무하다 2012년 전역했다. 이후 2019년까지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대학교사목부 사목을 담당했다.


- 군대를 두 번 간 경우다. 자청한 건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군대를 두 번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웃음) 군종사목의 경우 일반적으로 병사로 군대에 다녀온 뒤 수품(사제 신분)을 받고 교구 발령에 따라 장교로 재입대한다. 솔직히 불만이 없지 않았다. 당시 원망이 많았지만 제대하고 나서 돌이켜보니 ‘성숙해지기를 바라셨구나’라는 생각에 반성을 많이 했다.


- 위기청소년 돕는 사목을 5년째 하고 있다. 꽤 긴 시간인데, 보통 사제는 2~5년을 주기로 보직을 순환하지 않나.

▲순환보직이 기본 원칙인 건 맞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한곳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파견한 것을 따른 것인데, 전적으로 교회의 명령에 따른다. 사목을 ‘내 것’이나 ‘자기 왕국’으로 여기지 않기 위함도 있다. 사목적으로 의미가 있어도, 명예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영성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지만, 다행히 크게 지치진 않는다.(웃음)


- 당시 정순택 주교의 제안으로 버스 사목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왜 하필 버스였나.

▲당시 정순택 주교님께서는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데, 가출청소년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버스를 끌고 나가 제가 청소년을 만났으면 한다고 하셨다. 사실 대학교사목부를 오래 맡았기에 성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오히려 버스를 끌고 나가라시니 당혹스러웠다. 그때 명동성당에 앉아 잠시 고민했는데 사제적 양심에 비춰 봤을 때 틀린 말씀이 없더라. 결국 순종했다.

[탈종교 시대]③'위기청소년' 찾아 버스 모는 신부 "폭력·性·우울에 방치된 아이들 건져내야죠" 과거 kT 노원점 앞에서 서울A지T 버스가 활동하는 모습. 주민 민원으로 현재는 해당 장소에서 활동하지 않고 있다. [사진제공=서울A지T] 앞입니다 다만 지금은 여기서 활동하지 않고

- 여러 어려움이 있을 텐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민원을 제기하는 익명의 사람들이다. 길가에 버스를 대고 그 주변으로 위기청소년들이 모이다 보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여러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는데, 지자체에 민원이 접수되면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활동을 그만하라고 해서 난감했었을 때가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대개 그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다. 늘 그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눈에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민원을 조성해 지금껏 자리를 여러 번 옮겼다. 우리를 포함해 5개 단체가 청소년 지원 버스 활동을 하는데, 다른 4곳은 서울시 수탁기관이라 형편이 낫지만 저흰 그렇지 않다.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지치기보다 그런 민원이 더 힘들다.


-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있는지.

▲청소년지도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이 많이 온다. 실습으로 오기도 하지만, 실습이 끝나고 자원활동가로 봉사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영역이라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상담자격증 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관심이다. 이 친구들을 쉽게 낙인찍어버리면 변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이미 죄를 지은 범죄자를 수용하는 비용보다 예방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든다는 독일 연구 보고서도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있다. 기꺼이 손을 내밀면서 곁에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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