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약 1조원 규모의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가 엘리엇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엘리엇이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재를 신청한 지 5년 만이다.
20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PCA의 엘리엇 사건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금액의 약 7%인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달러당 1288원 기준)와 지연이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또한 엘리엇이 정부에 법률비용 345만7479.87달러(약 44억5000만원)를, 정부가 엘리엇에 법률비용 2890만3188.90달러(약 372억5000만원)를 각각 지급하도록 했다.
배상원금에 붙는 이자와 법률비용을 포함하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돈은 1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의 ISDS는 2018년 7월 제기돼,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ISDS 중 가장 오래됐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승인 과정에서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투표 찬성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달러(약 1조378억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2018년 11월 중재재판부가 구성됐고 2019년 4월~2020년 11월 서면, 2021년 11월15~26일 구술심리를 거쳐 양측은 지난해 4월과 5월에 두 번 추가서면도 제출했다. 그간 엘리엇 측은 "정부의 불법적인 개입이 없었으면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정부 측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맞섰다.
판정부는 지난 3월14일 절차종료를 선언하고 이날 판정을 선고했다.
엘리엇이 반대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과도 연결됐기 때문에, 한국 법원의 재판 결과가 이날 ISDS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모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중요했던 이 두 회사의 합병을 성사하고자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부정한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총 86억원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회장 측이 모두 재상고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합병 때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한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 주가를 의도적으로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춰 안정적으로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했다는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져 지금도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엘리엇은 이처럼 수사·재판 과정에서 당국자의 압력이 있었고 합병비율이 부당했다는 정황이 유력해지자 2018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해 이날 일부 승소 판정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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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판정문 분석결과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추후 상세한 설명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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