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낙연 대표와 추미애 장관의 ‘법치(法治)’ 불감증](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0080518502899702_1596621029.png)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검찰의 ‘월성 원전’ 관련 수사를 놓고 여당 대표와 장관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정부 정책 결정의 문제인데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고 있다는 취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일 “정치적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며 “검찰은 무모한 폭주를 멈추기 바란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던 5일 국회에서 “이것은 권력형 비리가 아닌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문제”라며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공격하고 흔들기 위해서 편파수사, 과잉수사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수사가 ‘정치적 수사’라는 공세의 근거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검을 방문하고 온 뒤에 수사가 시작됐고,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차장검사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윤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사라는 점을 들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런가?
먼저 이번 검찰 수사의 대상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 아니고,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빚어진 ‘불법’,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범죄행위’다.
다시 말해 왜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는지 그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 같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고 감사원의 감사를 앞두고 관련 자료들을 모조리 폐기해버린, 감사 업무방해, 그리고 공용문서 훼손, 경우에 따라서는 증거인멸 등 범죄 혐의들이 수사 대상이다.
이들 범죄의 정황들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로 이미 드러났고, 감사원이나 금융감독원의 정식 고발이나 수사의뢰가 없어도 이들 공공기관이 범죄 성립 여부를 검토해달라는 취지로 참고자료를 보내면 범죄 성립 가능성을 검토하고, 혐의점이 포착되면 수사에 나서는 게 검찰이 그동안 줄곧 해온, 또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정부에서만, 윤석열 총장만, 이두봉 검사장만 특별히 유별난 수사를 하는 게 아니란 의미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야당의 정식 고발도 이뤄진 상태다. 정말 터무니없는 내용의 고발이라 해도 일단 고발장이 접수되면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일단 수사에 착수해야 되는 게 검찰의 숙명이다. 하물며 이번 사건처럼 누가 봐도 범죄 정황이 뻔히 드러난 사안에 대해 정식 고발장까지 접수됐는데, 그래도 정부 정책을 돕기 위해 그런 거니까 봐주고 수사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공문서나 공전자기록을 의도적으로 폐기한 게 법적으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가?
형법 제141조(공용서류 등의 무효) 1항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수사 대상이 된 행위들이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에 해당될지를 떠나서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이 감사를 피하기 위해 감사원 면담을 하루 앞둔 일요일 저녁 컴퓨터에 저장된 444개의 문서를 삭제한 것 자체만으로도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낙연 대표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번 수사를 ‘정치적 수사’로 몰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검찰은 범죄가 있는 곳에 무조건 칼을 휘두를 게 아니라, 권력자가 오케이 한 사건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얘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 정책과 관련된 행위면 범죄도 용납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총장을 통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범죄 정황이 뚜렷하고 정식 고발이 접수된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정치적 수사’ 운운하는 것은 일선 수사팀에 ‘이번 수사는 잘못된 수사’라는 혹은 ‘수사할 대상도 아닌데 수사하는 거니까 적당히 넘어가’라는 시그널을 주는 ‘수사 가이드라인’ 제공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앞서 김경수 경남도지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때도 비슷한 정치 공세를 펼쳤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댓글 정도 조작해도 되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표창장 정도 위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래서 원전 폐쇄라는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 등 통계 수치 정도 조작해도 되고, 공문서 몇 백개쯤 휴지통에 버려도 된다고 보는 건지, 정말 그런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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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의는 물론 결과가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 절차도 정의로워야 하고 또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가장 강조해온 ‘공정과 정의’가 현직 여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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