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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철조망과 기관총이 만든 패션아이템, '손목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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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철조망과 기관총이 만든 패션아이템, '손목시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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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보통 직장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은 주로 '손목시계'로 압축된다. 핸드백, 목걸이부터 팔찌 등 각종 쥬얼리 제품으로 분류되는 여성들의 패션아이템과 달리 직장인 남성의 정장차림은 손목시계 외에 다른 아이템들이 좀처럼 들어갈만한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까지 손목시계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복위한 유럽 왕실들의 여성 귀족들을 중심으로 손목시계는 패션아이템으로 시작됐다. '리슬릿(wristlet)'이라 불리던 팔찌형태의 손목시계는 기능성보다는 장신구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 각종 보석과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19세기 당시 남성들은 주로 회중시계를 착용했으며 성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였던만큼, 손목시계를 차는 것은 치마를 입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수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철조망과 기관총이 만든 패션아이템, '손목시계' 19세기 여성용으로 제작된 손목시계 모습.(사진=파테크 필립 박물관/http://www.patekmuseum.com)


이런 손목시계에 대한 금기를 깬 것은 역설적으로 19세기 당시 가장 '남성다운' 일로 여겨졌던 전쟁터에서 시작됐다. 손목시계의 탄생과 직결된 전쟁은 영국이 남아프리카 일대 네덜란드계 보어인들과 2차례에 걸쳐 치뤘던 '보어전쟁'으로 알려져있다. 주로 1899년부터 1902년 벌어진 2차 보어전쟁이 많이 언급된다. 이 전쟁은 철조망과 기관총, 수류탄 등 현대전 무기들이 처음으로 대량 활용된 전쟁이자 초토화 작전, 대량학살이 함께 벌어진, '현대전의 서막'으로 흔히 불리는 전쟁이다.


1차 보어전쟁에서 보어인들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영국군은 2차 전쟁에서 초토화 작전에 나섰다. 전체 20만도 안되는 보어인들 토벌을 위해 50만이 넘는 대병력을 파견한 것. 보어인들의 게릴라전을 막기 위해 보어인 마을 주민들을 모아다가 강제수용소에 가둬놓고 대량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약 3만명의 주민들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것을 보통 홀로코스트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철조망과 기관총이 만든 패션아이템, '손목시계' 보어전쟁은 1880년과 1899년, 두차례에 걸쳐 일어난 전쟁으로 기관총, 참호전, 대량학살 등 현대전의 주요 성격이 처음으로 나타난 전쟁으로 보통 평가받는다.(사진=위키피디아)



이 참혹한 전쟁에서 손목시계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도로 집어넣을 여유조차 없이, 분당 수천발의 총알을 쏟아내는 기관총과의 싸움으로 전선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처럼 보병들이 오와 열에 맞춰 밀집대형을 이뤄 상호 얼굴이 보일정도까지 행군해 근접 사격전을 치르던 '한가한 시대'에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낭만이 있었을지 몰라도, 새로운 전장환경에서 이런 행위는 죽음을 부르는 오만일 뿐이었다.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시계의 보급률도 이 전쟁을 계기로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이전까지 시계는 대단히 고가의 제품으로 각 부대 하사관 이상들만 보급받을 수 있었다. 나머지 중대나 소대원들은 각자 시간을 확인할 필요 없이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여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기관총이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19세기식 밀집대형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이 변했고, 각 부대는 10명 안팎의 분대로 쪼개져 산개해야하는 새로운 전투방식이 생겼다. 이에따라 전 부대원이 시계를 차야했고, 시계보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철조망과 기관총이 만든 패션아이템, '손목시계' 15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한 체코 프라하의 천문시계탑.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군대 장교들을 제외한 일반사람들에게 그다지 필요치 않은 일이었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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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따라 보통 마을에서 교회의 종루 담당자, 군인 장교들이나 보던 시계는 모든 주민들이 봐야하는 필수아이템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공교육을 담당한 각국의 초등학교에서 시계보는 법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시계 제작의 기술발전과 더불어 손목시계는 귀족 여성들의 고가의 패션아이템에서 생활필수품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보어전쟁 이후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손목시계의 보급은 더욱 늘어났고, 전쟁에 투입되는 병력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에 의한 인적자원 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극빈층에 놓인 하층민들까지 징병해 차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영양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병력자원으로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영국정부는 하층민들의 영양상태 개선을 위한 급식 제공과 자금 지원 정책 등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국가주도 복지정책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보편적 복지의 기반이 된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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