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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훈육의 기술, 고문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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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훈육의 기술, 고문의 기술? 사진 제공=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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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부르크에 있는 중세범죄박물관은 12~19세기 유럽의 사법(司法) 양식을 소개하는 곳이다. 사법에 관한 고문헌과 중세 법관들의 캐리커처 등을 유리전시관을 통해 보여준다. 중세범죄박물관은 중세고문박물관으로도 불린다. 그 시절 유럽 사람들이 이용한 각종 고문 도구와 고문의 유형을 소개해서다.

전시실 중 한 곳은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의 교실이다. 의자에 배를 깔고 엎드린 학생에게 교사가 회초리질하는 모형이 등장한다. 박물관은 이를 포함해 '통나무 위에 무릎 꿇리기', '귀 잡아당기기', '당나귀 탈을 씌워 부끄럽게 만들기', '구석에 혼자 서 있도록 하기' 등이 그 시절에 쓰인 몇 가지 고문 또는 형벌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주입식 일체교육을 위한 훈육의 기술이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의 공간은 교육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감시하고 위계질서를 세우고 상벌을 부과하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라면서 "좀 더 교묘히 징수하거나 보다 더 많이 사취하기 위해서 훈육한다고 말하는 게 좋을 지 모른다"고 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은 어떤가. "학창시절에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다."(체벌의 악영향-런던통신中)


수년간 소속 선수 20여명을 야구배트나 발로 피멍이 들 만큼 때린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를 경찰이 지난 16일 입건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학생을 훌륭하게 키우고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훈육 차원에서 체벌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연지도를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소위 '얼차려'를 가한 중학교 체육교사는 지난 달 법원이 징역8개월ㆍ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무려 반 년 동안 학생 둘에게 엎드러뻗쳐, 오리걸음, 방과 후 운동장 뛰기, 지속적인 소변 검사를 시켜 신체적ㆍ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교사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라서 무죄"라고 주장한다. 체벌을 받은 학생 중 한 명은 '선생님이 벌 주고 욕해서 힘들다', '학교에 다니기가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국의 수많은 '인천 여고생들'은 어디서 그런 걸 보고 배웠을까.


러셀은 같은 글에서 이런 말도 했다. "대체로 모든 문명의 진보는 처벌 강도의 완화 및 신체적 응징의 감소와 함께 나아간다." 박물관에서나 보고 읽을, '사람이 사람을 고문하는' 이야기는 아직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려온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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