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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3ㆍ5 그리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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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3ㆍ5 그리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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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만한 게 없다." 귀한 말씀은 실천이 어려운 법. 다산 정약용의 저 가르침도 서민들은 버겁기만 하다. 실은 '숨겨두거나' '숨겨둘 만한' 재산이 서민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세금 떼고 카드값 내면 여유자금이래봤자 쥐꼬리 반토막. 그것을 쪼개고 나눠봐야 한달 버티기도 어렵다. 월급날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기만 하고. 그러니 하얀봉투 앞에서 손이 벌벌거린다. 3만원? 5만원? 아니면 10만원?


경조사비에 대한 직장인들의 부담은 말하나마나다. 어느 설문조사를 보니 직장인들의 70% 정도는 경조사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얼마를 들고 갈지는 고차 방정식에 가깝다. 상대가 나와 어느 정도 친밀한지를 '곱(x)'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할지를 '더한(+)' 다음, 섭섭했던 기억이나 감정적 거리를 '나누(÷)'거나 '빼면(-)' 얼추 근사치에 접근한다.

여기에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품위유지비'를 대입해야 한다. 선배여서, 임원이어서, 혹은 억대 연봉자여서. 위로 갈수록 기대치가 높아진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뒷통수가 따갑다. "선배가 좀스럽게" "임원이라면서 겨우…" 그러니 어쩌랴. 옹졸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달러빚'이라도 내야 하나. 법인세니 상속세니 말들이 많지만 사실은 품위유지세가 골칫거리다. 그 와중에 '청탁금지법'까지.


'3ㆍ5ㆍ10'이라는 익숙한 운율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지난해 9월28일 시행). 사회 부조리를 일소할 것이라는 취지는 여전하지만, 내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일반인들이야 체감하기 어렵지만 당사자들은 고통스러운가 보다. 한우와 과일, 화훼 등 농축산물 생산 농가는 매출 감소를 호소하고, 이름난 한식당들도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저들의 고충을 해소해주자' '아니다, 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격론은 국회로 무대를 옮겼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청탁금지법 개정안은 14건. 그 어느 것도 추석 전 처리는 글렀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은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그렇다치자. 다만 경조사 10만원은 '손봐야 한다'에 한표 던진다. 정부가 정한 상한선이 어찌된 일인지 하방경직성을 발휘하니 말이다. 10만원을 넘기지 마라고 했더니 평균 10만원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경조사비 인플레'에 직장인들은 허리가 휜다. 이성보 전 권익위원장도 "경조사비 10만원은 더 낮추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이제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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