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잔류문서 공개를 두고 여야간 논쟁이 달아 오르고 있다. 여권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취지인 공개의 원칙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하고 있는 반면 야권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일 수도 있는데 내용을 밝히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고 주장한다.
논란원인의 제공은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목록조차 봉인한 황교안 전 총리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과정에서 시작됐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기록물로 추정되는 문건이 발견됐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일반기록물일 경우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통령 지정기록물이면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공개할 수 있는데 목록이 지정기록물이 된 까닭에 쏟아져 나온 문서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지난 2007년 참여정부는 그동안 비사(관련자의 증언 등)로만 전해지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자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했다. 봉건왕조 시대에도 통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초로 남겼는데 근?현대 한국사에 있어 청와대 의사결정과정이 구중궁궐의 비사처럼 전해져서는 안되겠다는 통렬한 반성의 산물이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은 제16조 1항에 명시된 것처럼 공개의 원칙이고 이는 법제정 당시 모델로 삼은 美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도 동일하다
하지만 제정당시 논란도 많았다. 대통령의 의사결정과정을 모두 공개할 경우 5년 단임의 제왕적대통령제 특징을 내포한 국내정치 현실에 있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나왔다. 표현은 정치적 혼란이라 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법제정시 제17조(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에 6개의 사유에 해당 할 경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의결 또는 관할 고등법원장(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해서만 공개할 수 있도록 요건을 엄격히 규정했다.
무분별한 소송제기를 통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공개요구를 방지하고자 서울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에 대해서도 단서 조항으로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민경제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으면 영장을 발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까지 명시한 것을 보면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공개를 엄격히 하고자 했던 법제정 당시의 고민은 짐작하고도 남을 바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의 6가지 사유 중 2가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대통령과 보좌기관 등 사이에 있어 의사소통기록물로 공개가 부적절 한 경우(5호 사유),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6호 사유) 등이다.
정무적 판단하에 입법취지인 공개의 원칙을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침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인 법률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검장을 거쳐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하였던 고위직 법조 경력의 황 전 총리가 이런 기초적 법률지식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가 목록마저도 밀봉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비유라고 욕을 먹더라도 해야겠다. 길가다 마주친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평범한 상식일진데 하물며 청와대에서 발견 된 잔류문서가 공개대상인 일반 대통령기록물인지 비공개 대상인 대통령지정기록물인지 조차 알 수 없어서는 안된다.
헌정 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구속까지 이어진 박근혜 정권에 있어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목록까지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야 할 만큼 국민의 알권리에 족쇄를 채운 황 전 총리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울러 현정부도 법제처 등 관련 부처의 대통령기록물법 검토를 통해 공개의 원칙이라는 입법취지를 훼손하는 꼼수를 사용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비해야 한다. 법이 통치자의 이익에 부합해서는 안된다.
영국 법치주의 확립과정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 원리를 주장한 코크경이 국왕 제임스 1세와 논쟁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국왕이라 할지라도 신과 법 밑에 있습니다.”
박관천 전문위원 parkgc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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