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서 北인권결의안 물고뜯어…'갑철수''성범죄모의'만 부각
트럼프, 시진핑·아베와 북핵문제 논의 전화통화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성기호 기자]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는 등 한반도 외교ㆍ안보 상황이 고비를 맞이했지만 23일 대선후보 TV토론회는 이 같은 우려를 씻어내는데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심각한 외교ㆍ안보 위기를 헤쳐나갈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대북송금, 송민순 회고록 등 과거사안을 놓고 네거티브 공세만 오가는 '맹탕 토론회'로 전락한 탓이다.
대선주자들은 사회자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한 타개책'을 묻는 질문에만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했을 뿐 나머지 토론시간 대부분을 '말꼬리잡기식' 네거티브 공세로 채웠다. 10년도 훨씬 지난 북한 인권결의안 논란을 비롯해 주제에서 벗어난 일부 후보의 자질문제를 공격하는데 집중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미래 발전적인 토론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은 "갑철수냐 아니냐"를 놓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격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강간 모의'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사퇴를 거듭 요구하는 공세에만 치중했다.
한미동맹과 대중국관계,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 등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차기 정부가 집권하는 향후 5년 외교안보 밑그림을 이해하기가 전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소위 '코리아 패싱(미국의 주요 정책결정에서 한국을 배제한다는 뜻을 담은 용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선후보들의 토론이 끝난 이후인 23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각각 전화통화를 하고 북핵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대선후보들이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는 동안 미일중 정상들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할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세차례 통화를 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공조방안을 논의하지 못한 것이다.
대선 후보들도 대부분 이번 토론회에 대해 불만족스런 입장을 내놨다.
문재인 후보는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열심히 했다"며 "이렇게 토론을 통해서 후보 간 우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품격있는, 조금 수준 높은 토론이 됐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돼지발정제' 문제로 사퇴 압력을 받은 홍 후보는 "토론의 질이 좀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토론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조그맣고 저급한 문제를 갖고 서로 물어뜯고 욕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사람 수가 적으면 좀 더 집중적으로 토론할 수 있겠다"며 양자토론을 다시한번 요구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초반부터 홍 후보 자격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거나 개운치는 않다"고 말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제가 좀 바로잡아보려고 애를 많이 썼다"며 "(토론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의식돼서 제가 오금이 저릴 판"이라고 평가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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