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캔터 감독의 영화 '댄서'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2012년 1월 24일, 영국 공연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남자 수석 무용수가 2년 만에 갑자기 탈단(脫團)했다. 리허설이 잘 되지 않자 그대로 연습실에서 나갔다.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이유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대중은 그가 괴로움에 짓눌려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는 눈으로 뒤덮인 도시의 새벽 골목을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옷을 홀랑 벗고 차로로 뛰어들어 한 마리 백조라도 된 듯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속옷까지 벗고 눈 위에 대(大) 자로 누워 해맑게 웃었다.
스티븐 캔터 감독의 영화 '댄서'는 세르게이 폴루닌(28)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발레 입문에서 은퇴와 번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폴루닌과 주위 사람들의 인터뷰, 뉴스 영상, 기사 등을 통해 전한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주인공의 이면에 주목한다.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면서 남모를 아픔과 노력을 부각하는 식이다. 댄서는 조금 다르다. 폴루닌의 아름다운 발레와 인간적 매력도 조명하지만 발레의 엄격한 규범, 헌신적 교육의 폐해 등을 두루 조명한다. 그의 심경 변화에 맞춰 다양한 성격의 발레 공연을 배치해 설득력을 배가한다.
출발은 다소 파격적이다. 폴루닌이 마치 약물에 의존해 공연하는 것처럼 등장한다. 대기실에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약물을 소개한다. "제 심장을 위한 거죠. 미군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들었어요. 공연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강력하죠." 대중에게 각인된 그의 모습이다. 파티 광, 기분전환용 약물, 우울증, 불화. 몸은 문신으로 빈 곳이 사라져간다. 팔뚝에는 영화 '배트맨'의 악역인 조커와 러시아의 발레 스타 이고르 젤렌스키의 얼굴을, 등에는 '정신병원' 등 각종 문구를 요란하게 새겼다. 이는 그의 인생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아픔을 또 다른 아픔으로 덮으려고 한 흔적으로 드러난다. 약물 또한 폴루닌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발레를 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폴루닌의 고통은 가족의 헌신적인 교육열에서 비롯된다. 우크라이나의 가족과 은사는 모두 그를 타고난 춤꾼으로만 기억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포르투갈로 건너가 정원을 가꿨다. 수입을 족족 아내에게 부쳤지만 6년 간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끝내 이혼했다. 그의 아내는 아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모든 일정을 관리했다. 부담에 짓눌린 폴루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톨이가 됐다. 이 갈등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와 어머니의 대화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들어가는 비용이 아주 많았지. 하나 같이 비쌌거든. 그래서 너한테 더 엄격했던 거야." "전 혼자 힘으로 이루고 싶었어요. 엄마는 그런 저를 통제했고요. 믿지 못한 거죠.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그게 인생이고, 책임이란다."
폴루닌의 고뇌는 무대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춤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계산하지 않는다. 춤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야 할 규정이 있지만 흐르는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싶어 한다. "도약해서 공중에 머물 때, 제 몸이 그걸 해낼 때 그 몇 초간 춤추는 가치를 느껴요." 시간이 흐르면서 움직임은 조금씩 달라진다. 초반에 보이는 공연에서 몸짓은 많이 절제돼 있다. 특히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시종일관 박력 있게 뛰어다니지만,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모습이 더욱 고통스럽게 전달된다.
억눌림 감성은 아일랜드 가수 호지어의 록 음악 '테이크 미 투 처치(Take me to church)'에 맞춘 솔로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자신이 믿던 신을 거부하고 사랑과 함께 해야만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노래에서 다양한 몸짓으로 가치관의 혼란을 표현한다. 그는 마치 구원을 호소하듯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벌떡 일어나 힘차게 날아오르지만, 괴로움에 휩싸인 듯 머리를 감싸 안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무릎을 꿇고 만다. 폴루닌은 해법을 찾았을까. 적어도 발레의 규범에서는 한결 자유로워진 듯하다. 이어지는 제롬 로빈스의 초청 공연에서 그의 움직임은 한결 편안해 보인다. 한 편의 시를 쓰듯 푸른 빛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얼굴은 알몸으로 눈 위를 거닐었을 때와 흡사하다. 티 없이 맑고 순진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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