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 이 주식④ - 2001년 상장 이후 실적은 10배, 주가는 100배 올라
“이 회사 주가수익비율(PER)이 40이 넘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이 넘어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인데 지금 이 회사를 추천하는 것은 위험이 크죠.”
LG생활건강을 투자자들에게 추천하는 것과 관련해 5~6년 전에 한 증권 전문가에게 들은 말입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우리 증시에서 대표적인 고성장주이자 고평가주였습니다. 성장성은 매우 뛰어나지만 주가가 이미 많이 상승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가가 이미 40만원을 넘었었고 고평가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LG생활건강은 그 이후로도 주가가 계속 올라 2016년 한때 119만원대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LG생활건강이 2001년 LG화학으로부터 분리돼 처음 증시에 상장 했을 당시 주가가 1만원대에서 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15년만에 무려 주가가 100배가 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1000만원 투자했으면 10억원이, 1억원을 투자했으면 100억원이 됐을 가격입니다. 불과 15년 만에 LG생활건강 같은 대형주의 주가가 100배 가까이 상승한 것은 우리 증시 역사에서도 상당히 드문 일입니다.
◆차석용 CEO 부임 이후 환골탈태
LG생활건강의 주가 상승은 당연히 실적 증가에 기인합니다. LG생활건강의 2006년 주당순이익(EPS)은 3000원 가량이었지만 지난해 3만2000원까지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실적이 10배 이상 올랐으니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실적 상승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차석용이라는 걸출한 최고경영자(CEO)의 마법같은 인수합병(M&A) 능력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2005년 초 LG생활건강 대표이사로 취임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는 장수 CEO입니다. 변화가 빠른 기업경영 환경 속에서 한 회사에 대표로 10년 이상 근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LG그룹 내에서도 차 부회장 만큼 오래 근무한 CEO는 오너가를 제외하고는 현재 없습니다.
차 부회장이 부임하기 전에 LG생활건강은 치약과 비누, 세제 등 주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실적도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부임 직전인 2004년에는 영업이익이 2003년 대비 30% 가까이 감소하고 매출액도 정체되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2004년의 경영 성과는 계속되는 내수 침체로 인한 시장의 위축과 급변하는 경쟁구도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미흡 등으로 인해 매출 9526억원과 경상이익 522억원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2005년 초 LG생활건강이 주주총회에서 영업보고서를 통해 밝힌 내용)
그런데 차 부회장 부임 이후 LG생활건강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하게 됩니다. 기존의 생활용품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화장품과 음료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를 위해 차 부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수차례의 크고 작은 M&A를 단행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코카콜라입니다. LG생활건강은 5년 동안 매년 수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던 한국코카콜라를 2007년 인수해 불과 1년 만에 흑자전환하고 현재는 700억원대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 계열사로 변모시켰습니다.
코카콜라를 시작으로 LG생활건강은 다이아몬드샘물(2009년)과 더페이스샵(2010년), 해태음료(2011년) 등 다양한 회사를 사들였습니다. M&A 건수가 총 10건이 넘는데 이 중에 크게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케이스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에서 차 부회장을 M&A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M&A가 지속적으로 성공하면서 LG생활건강의 EPS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해도 빠짐없이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6조941억원, 영업이익은 8809억원, 당기순이익은 5792억원이었습니다.
이런 성과에 대해 차 부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의 성과에 대해 나도 놀랄 때가 있다”며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는 경영을 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는 겸손한 자평을 한 바 있습니다.
◆주가 100만원 넘었지만 최근 사드 악재로 주춤
LG생활건강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차석용 부회장이 LG생활건강에서 이룬 성과가 너무 뛰어나다 보니 차 부회장의 거취 문제가 회사의 위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차석용이라는 존재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죠.
발단은 차 부회장이 2014년 중순 보유 중인 LG생활건강 주식을 매도하면서였습니다. 당시 차 부회장은 보유 중인 보통주 2만2000주(당시 시가로 110억원어치)를 전량 매도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LG생활건강 주가는 하루만에 12% 가량 폭락했고 시가총액도 조단위로 사라졌습니다. 2013년 50만원을 넘었던 주가는 2014년 40만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증권 업계에서는 차 부회장이 회사를 떠나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LG생활건강은 2016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2% 감소하고 추진 중인 M&A도 접는 등 당시 여러 가지 악재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은 회사 주가에 더 안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차 부회장은 회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혔고 주가는 회복해 2015년과 2016년에 100만원을 넘고 역대 최고가를 달성했습니다. 실적도 우려를 극복하고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최근 다시 주춤하는 분위기입니다. 주력 사업 중에 하나인 화장품 사업이 중국과 관련한 악재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사드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시비를 걸면서 LG생활건강외에도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사는 최근 “3월 중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 면세점과 서울 일부 상권 내 로드샵, 백화점 등의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며 LG생활건강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봤을 때 LG생활건강의 주가가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화장품 사업 부문의 불확실성이 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기업에 대한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모멘텀을 기대해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 부회장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시장의 기대와 관심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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