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나무 기름까지 채취 강요…정부기관, 피해목 전국지도 만들어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일제강점기 전쟁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수탈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조선의 산업 발전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항만과 철도를 건설해 전국팔도에서 끌어온 자원 수탈에 매진했던 일본은 조선의 산과 들판, 강과 바다로도 모자라 나무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그들은 소나무에 주목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소나무에서 나는 기름, 송탄유
송탄유는 소나무에서 생산되는 기름으로 소나무에 상처를 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기름을 만드는 방법과 송진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 또는 소나무 뿌리를 가마에서 열을 가해 얻는 방법으로 채취가 가능했다. 일본은 전투에 투입할 비행기의 항공유 보급을 위해 송탄유 생산을 적극 권장했는데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소나무 수탈이 시작됐다.
소나무의 수난과 민중의 고통
예로부터 약재와 등불의 원료가 된 송진은 전통적인 산림자원이었으나 여기서 기름채취가 가능한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은 공출제를 통해 물적, 인적 수탈에 더욱 더 열을 올렸다. 처음엔 마을 인근에서 송진 채취 작업을 했던 조선인들은 점차 그 온전한 소나무의 수가 줄어들게 되자 산세가 험한 숲으로 내몰려 할당 된 송진을 채취해야만 했고, 이렇게 채취 된 송진은 다양한 공정을 통해 기름으로 만들어져 일본군의 수중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일본이 삼림침탈에 나선 것은 1905년, 러일전쟁 승리를 통해 탈취한 삼림벌목이권을 확보하면서부터 시작됐으며,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삼림지대 벌목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독점한 일제는 1908년 삼림법을 제정, 기존의 삼림소유체제를 완전히 뒤엎으며 신고 된 삼림의 80%를 국유림으로 편입시켜 본격적인 수탈에 나섰다.
수탈의 고난, 징용의 공포
제대로 남아있는 소나무의 수가 줄어들자 일본은 땅에 묻힌 관솔캐기 작업을 강요했는데, 개인에게 할당 된 양의 송진을 채우지 못하면 즉각 전장으로 징용 보내겠다는 겁박이 이어져 작업으로 인한 고통과 징용에 대한 공포로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전쟁이 본격화 되던 1942년부터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도 예외 없이 관솔캐기 작업에 동원됐는데, 일본은 대동아전쟁에 조선사람 또한 '전후의 시민' 으로서 참전하는 것이 당연하며 몸을 돌보지 않고 전쟁에 임할 것을 거듭 세뇌시켜나갔다.
통상적으로 송탄유는 소나무에 “V”자형 상처를 내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만들어졌는데, 소나무에 남겨진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상처인 송진 채취와 그에 따른 소나무의 피해는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 당시 피해 소나무에 대한 발견 및 제보가 이어지자 국립산림과학원은 SNS를 통해 송진채취 피해목 사진을 제보 받아 피해 소나무의 분포 및 전국 피해 현황을 조사해 '전국 송진 채취 피해목 지도'를 제작 중이다.
살아남아 힘겨운 증언을 이어가는 수많은 일본의 침탈 피해자들의 목소리조차 외면하는 일본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제 몸을 통해 수탈을 증거하는 소나무에 대해선 무어라 변명할까. 끔찍한 역사의 한 순간을 전국 각지에 우뚝 솟아 영욕을 참아낸 소나무들이 묵묵히 기억하고,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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