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된지 12년 만에 첫 본안 판결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투자자들이 제기한 증권집단소송 승소 판결이 나왔다. 국내에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됐던 지난 2005년 이후 12년 만에 나온 첫 본안 판결이라 향후 여파가 주목된다. 500여명에 가까운 전체 ELS 투자자들도 피해구제를 받을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법원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모씨 등 투자자들은 도이치은행(도이치방크)을 상대로 낸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김 경 부장판사)가 밝힌 손해배상액은 총 85억8000여만원이다. 김모씨 등 대표 당사자 6명에게 지급된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7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투자자 김씨 등은 삼성전자와 KB금융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ELS 289호'(한투289 ELS)에 투자했다. 이 상품은 2년 후 만기상환 시 기초자산의 평가가격이 최초 기준 가격의 75%를 넘을 경우 28.6%의 수익률을 보장받고, 한 종목이라도 75% 미만이면 원금이 손실되는 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헤지(회피)하기 위해 도이치은행과 이 ELS와 같은 구조의 '주식연계 달러화 스와프계약'을 맺었다. 당시 총 198억여원어치가 팔렸다.
만기일인 2009년 8월 26일 삼성전자 주가는 최초 기준 가격의 75%를 훨씬 웃돌았지만, KB금융 주가는 75%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장 마감 직전 KB금융 주가는 5만4800원으로 상환 기준 가격인 5만4740원보다 약간 높았다. 하지만 마지막 10분 동안 주가가 100원 떨어져 결국 김씨 등은 원금의 74.9%만 돌려받았다. 이에 김씨 등은 "도이치은행이 마지막 10분간 KB금융 주식 12만8000주를 집중 매도해 주가가 내려갔다"며 지난 2012년 소송을 냈다.
집단소송(Class action)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제기하는 공동소송과 달리 대표당사자가 승소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 전원이 배상을 받는 제도다.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이번 선고는 김씨 등이 2012년 소송을 제기한 이후 5년 만에 이뤄졌다. 증권집단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송허가신청이 받아들여져야 하기 때문에 신청이 기각되면 집단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
김씨 등이 낸 소송허가신청은 1심에서 받아들여졌지만 2심에서는 기각됐다. 이후 대법원이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파기했고 파기환송심(서울고법)과 대법원을 다시 거쳐 확정됐다. 소송허가를 받기 위해서만 무려 5차례의 재판을 받은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주가연계증권(ELS) 289호'의 전체 투자자는 5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30명을 제외하면 470여명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직접 소송에 참여한 6명 이외에도 나머지 피해자들은 소송참여 없이 집단소송의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집단소송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한국투자증권 부자 아빠 주가연계증권 제289회'(한투289 ELS) 상품에 투자했다가 만기일에 약 25%의 손실을 본 모든 투자자에게 효력이 미치게 된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