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의 호(號)는 수백 개입니다. 300여개라고도 하고 500개가 넘는다고도 합니다. 시와 글, 그림마다 다릅니다. 장소와 상황에 맞춰서 호를 썼습니다. 처지와 나이를 생각하며 자신을 칭하였습니다. 스스로의 근본과 나아갈 바를 짚어서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청나라 학자 '완원(阮元)'을 따라 배우고 싶은 뜻을 담아서 '완당(阮堂)'이라 했습니다. 지극한 연모의 정이 담긴 작명이지요. '사마천'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름에 담았던 일본 소설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 생각도 납니다. 환상의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이 되고 싶은 보컬그룹 'SG워너비'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종류의 이름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의 그림자임을 자처하며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궤도를 따라가는 것 같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물론 김정희 선생이 보여준 삶의 방식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지요.
추사가 사용한 이름의 대부분은 자신의 길이나 상황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냉철한 탐구정신과 치열한 현실인식을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이곳 '과천'에서 지어 쓴 이름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옛집 '과지초당(瓜地草堂)'에서의 나날이 그림처럼 들여다보이는 이름들이지요.
과농(果農), 과로(果老), 과산(果山), 과월(果月), 과전(果田), 과파(果坡).... 추사는 여기서 온몸으로 실학자(實學者)가 되었습니다. 추사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과천 농부, 과천 늙은이로 이곳의 산과 달과 밭과 언덕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았으니까요. 운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주인의식입니다.
추사가 일생동안 보여준 태도지요. 그는 어디에 놓이든 자신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자리매김할 줄 알았습니다. 산이나 바다에 가면 시인이 되고, 옛날 비석 앞에 서면 학자가 되었습니다. 난초를 보면 화가가 되고, 스님과 마주 앉으면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천축의 옛 선생, 곧 부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입니다.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 서있는 바로 그곳에 진리가 있다." 추사가 고단한 삶과 맞서 싸운 힘도 대부분 거기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과천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싶습니다. 전자가 타고난 것이었다면, 후자는 고승(高僧)이 도달한 경계를 닮았지요.
혹시 서울 봉은사 '판전(板殿)' 편액의 글씨를 아시는지요.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추사가 일곱 살 때 썼다는 '입춘대길'의 서체가 이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동의합니다. 소년의 글씨가 지닌 자유와 용기가 칠십 노인 손끝에서도 흘러나왔다면, 최고의 경지임에 틀림없지요.
제가 보기엔, 추사의 매력 하나는 '동심'입니다. 증거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호를 지었겠습니까. '삼십육구주인(三十六鷗主人)', '담면(啖麵)', '염옹(髥翁)'. 순서대로 풀어보지요. 서른여섯마리 갈매기의 주인, 국수 먹는 사람, 수염 많은 늙은이.
다시 봉은사 글씨 이야기입니다. 일곱 살 아이의 마음으로 써놓고는 '일흔 한 살 병든 노인이 썼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 죽음을 사흘 앞둔 날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지요. 문득 '칠십일과'를 '칠십일 년 생애의 열매(果)'로 읽고 싶어집니다.
추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세 군데입니다. 충남 예산의 고택, 제주 대정읍의 유배지 그리고 여기 과천의 추사박물관. 앞의 두 곳은 즐겨 찾는 여행지라서 잊지 않고 들렀다 옵니다. 이곳은 출퇴근길이니 말할 것도 없지요. 비록 자동차로 지나더라도 과천에만 들어서면 저는, 추사의 체취를 느낍니다.
자연히 이 박물관 앞에 차를 세우는 날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의 작품들이 대개 이곳 생활에서 나온 것들이라 그럴까요. 당신이 여기서 자연인으로 지냈던 까닭일까요. 이곳에 오면 당신의 땀내, 붓을 든 손에도 배였을 흙 내음, 즐겨 드시던 음식 냄새까지 맡게 됩니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여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제가 이 두 줄을 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멋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두부와 오이 생강 그리고 나물반찬, 이보다 더 나은 요리가 어디 있을꼬. 부부와 아들딸 손자가 함께 있는 자리,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어디 있을꼬."
이 글에다 추사는 이렇게 토를 답니다. "이것은 시골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중략) 이 맛을 누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선생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들, 눈앞의 것들에서 얻어지는 행복을 아는가." 일상에 대한 '대긍정(大肯定)'입니다.
과천을 지나시거든 김정희 선생 댁에 한번 들러보십시오.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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