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한곳만 응시하고 있던 남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오십니다." 삼삼오오 몰려섰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지어 늘어섰습니다. 다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세들을 고쳤습니다. 대부분은 소복 차림의 젊은 여성들. 시선은 모두 복도 끝에 가 있었습니다.
저도 모자를 벗어들고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운구(運柩)행렬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선생님...선생님...' 흐느끼는 소리가 낮게 깔렸습니다. 후학(後學)을 기르는 것을 제일의 복(福)으로 여겼던 분답게 수십 명의 제자들이 당신 앞에서 슬피 울었습니다. 성창순(成昌順) 명창.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당신은 김연수, 김소희, 박녹주, 정응민, 정권진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로부터 두루 배우고 익힌 값을 고스란히 되갚고 가는 사람. 당신의 삶은 예인(藝人)의 본보기였지요. 끊임없이 갈고 닦지 않으면 빛날 수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 오랜 믿음이 '참 명제(命題)'인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다.' 당신은 배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복습을 하였습니다. 송두리째 당신 것을 만들지 못하면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삼막사(三幕寺)에서 했던 '흥보가' 공부가 꼭 그랬지요.
백일 동안의 산중수련이 끝나던 날, 박녹주 선생이 하신 말씀은 유명합니다. "너는 '소리 도둑년'이다." 아, 도둑! 그것은 학생이 스승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닐까요. "너는 내가 가진 것을 다 털어갔다. 나는 이제 빈털터리다." 그러나 스승의 말투에는 도둑맞은 사람의 억울함이나 허탈함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어여쁜 도둑입니다. 사랑스러운 도둑입니다. 스승은 그날부터 이 귀여운 도둑을 자랑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 학생이니 어떤 선생님의 총애를 받지 못했을까요. 김소희 선생의 가르침 또한 크고 무거웠습니다. "사설(辭說)을 옳게 알지 못하면 네 소리는 시늉에 그치고 만다. 한문과 서예를 배워라."
당신도 스승으로 모셨던 한학(漢學)의 대가 '우전 신호열' 선생을 찾아가 배우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도둑은 그분에게서도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글과 글씨를 훔쳐냅니다. 그 결과, '국전(國展;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서예부문에 입상할 정도의 문리(文理)를 터득합니다. 운동선수가 글공부까지 잘한 격이지요.
훔치는 만큼 실력은 불어나고, 성창순의 이름값도 높아집니다. 인간문화재가 되고,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자신의 장기(長技)인 '심청가'를 통해 독특한 '보성(寶城)소리'의 경지를 이뤄냅니다. 묵직하면서도 또렷한 창(唱)이지요. 봉우리와 골짜기가 분명한 소리지요.
어제 저는 밤늦도록 당신의 LP판을 들었습니다. 1988년, 어느 신문사가 펴낸 국악전집에 실린 '심청가' 여덟 면(面)을 다 들었습니다. '적벽부', '백발가' 등의 단가(短歌)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오십대 초반쯤에 녹음된 것인데, 그야말로 농익은 소리입니다.
그 소리의 임자가 멀리 간다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이라도 보려고 새벽 세 시에 잠을 깼습니다. 저는 이제 인기가수나 댄스그룹의 '극성 팬'들을 흉보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공항까지 쫓아다니며 이름을 연호하고 깃발을 흔드는 마음이 지금 제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다섯 시에 발인(發靷)입니다. 전라도 보성 '판소리 성지(聖地)공원'까지 가야 해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떠나는 모양입니다. '국악인장(葬)'이라지요. 조문객도 많을 테고 추모공연도 한다니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명창 한 분을 보내는 모습을 따라가서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저는 그저 여기서 손을 흔들 뿐입니다.
새벽길이니 서너 시간이면 닿겠지요. 거기에도 도둑들이 많이 모여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스승으로부터 도둑이었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의 뼈와 살을 제자들에 다 내어주셨을 테니까요. 대학 강의실에서, 당신이 만든 교실에서 당신의 소리를 빼앗아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심청가'나 두어 군데 더 들어야겠습니다. 앞 못 보는 지아비와 어린 딸을 두고 '곽씨 부인' 떠나는 부분과 그녀가 하늘나라 '옥진(玉眞)부인'이 되어 심청과 재회하는 대목. 떠나는 것이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것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인연의 수레바퀴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심봉사 눈뜨는' 대목 또한 아니 들을 수 없겠지요.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아이고 답답하여라. 두 눈을 끔쩍 끔쩍 하더니마는 눈을, 번쩍! - 떴구나!" 몇 번을 들어도 좋은 이 대목에서, 이 험한 시절의 '해피엔딩'도 빌어보아야겠습니다.
지상에서 훔친 것, 고스란히 다 내려놓고 떠나는 '대도(大盜)'의 명복을 빕니다.
윤제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