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최근 아파트 분양 열기가 과열되면서 '집단대출'을 놓고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집단대출이 크게 늘어나 가계부채 문제 악화가 우려되지만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21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집단대출 증가세는 우려할만한 상황이어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가계부채 규제책을 시행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상황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집단대출도 일반 대출처럼 대출자 개인의 상환능력을 꼼꼼히 따지고 초기부터 원리금을 분할 상환토록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되겠지만 자칫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를 가장 큰 가치로 놓고 집단대출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경우 그렇게 가면 되겠지만, 오히려 집단대출 문턱을 낮춰달라는 주택건설업계를 비롯해 다양한 시각이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라고 말했다.
김한기 신임 한국주택협회 회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0월부터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면서 시중은행들이 집단대출을 중단하거나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며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이달 초 “주택매매 시장이 침체되지 않도록 가계부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신규 집단대출이 늘어나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한ㆍKB국민ㆍKEB하나ㆍ우리ㆍ농협ㆍ기업 등 6대 은행의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60조1377억원으로 전월보다 3조5421억원 늘어 올 들어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에서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12%에서 지난달에는 50%를 넘길 정도가 됐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 투자 열풍이 불고 있기도 하다. 기존 주택을 사고 팔 때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을 받지만 분양받을 때는 예외로 인정된다는 점 때문에 몰리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일부 지역의 은행에 대한 현장점검도 검토하고 있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계약 시점부터 입주까지 몇 차례에 걸쳐 내야 하는 중도금 대출로 이뤄진다. 지난해 예년 평균인 26만가구의 두 배가량인 51만가구의 분양 물량이 쏟아진 여파로 집단대출 규모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다 신규 분양으로 인한 대출까지 큰 폭으로 늘어나면 가계부채 총량이 눈덩이처럼 부풀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분양했거나 예정된 물량도 42만여가구에 이른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 공급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예년 평균보다 월등히 많은 물량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기존 주택과 달리 신규 주택에 대한 집단대출 규제는 여전히 예외 조항으로 간주되는 규제 차익으로 인해 분양시장이 과열되는 가운데 주택 준공 이후 집단대출에서 개인대출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상환여력이 취약한 차주가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예외조항을 보완해 집단대출 등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 송인호 연구위원은 “집단대출을 규제한다고 해서 분양 시장이 바로 꺼진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분양 과열을 빚는 지역에 국한해서 규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가계부채 연체율이 낮은 편이지만 구조조정을 비롯해 외부충격으로 갑자기 점프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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