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총선후보 집중탐구 - '무상급식' 찬밥 먹은 오세훈의 종로 귀환전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근대 수학의 확률론을 정립한 파스칼의 이 격언은 사실 도박판에서 유래했다. 잭팟과 판돈,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필요한 승부수를 떠올린다면 정치는 도박과 많이 닮아있다. 총선 공천발표를 놓고 도박판을 방불케 하는 환호와 한숨이 교차하는 정치판에 가장 확실한 것을 잃고 홀연히 떠났던 사내가 돌아왔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 공천을 확정 지은 오세훈(새누리당 종로구 후보, 전 서울시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안에는 직을 걸고 승부수를 띄우는 기질로 이미 두 번이나 정계를 떠난 전력이 있는 타짜이자 전략가. 그의 등판이 확정됨에 따라 종로는 이번 4·13 총선 최대 격전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기 변호사에서 소장파 국회의원을 거쳐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을 역임했으나 무상급식 역풍으로 시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대학 강단과 외국 연수, 남미,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 자문역을 하며 5년간 와신상담해온 그는 어떤 목표를 위해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온 것일까? 그의 생각과 관점을 과거 오세훈의 말(저서, SNS, 발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부끄러웠습니다.” - 2004년 1월 6일, 불출마 선언
재선이 확실시되고 있던 서울 강남을, 초선의원 오세훈은 당내 공천갈등에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한다. “현실을 모르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볐던 무모함, 잘못된 걸 알면서도 묵인했던 무력함, 묵인을 넘어 어느새 동화돼버린 무감각함이 부끄러웠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는 불출마선언과 함께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는데, 먼저 5·6공 출신 및 영남인사 용퇴론을 주장해 공천대상의 세대교체를 주도했고,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 원천차단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 법) 개정안 통과에 앞장섰다. 그 직후 자신은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고, 국회 입성 전에 몸담았던 환경단체로 돌아가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 전 국민적 성원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데." -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 명진출판, 1995
단호했던 정치은퇴선언이 무색하게 오 후보는 이듬해부터 서울시장 후보군에 지속적으로 이름이 오른다. 본인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엉터리입니다”라고 부인하고, 그해 11월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불출마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불출마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으나 선거흥행을 염두에 둔 당 지도부의 ‘백의종군’ 요구에 서울시장 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 오 후보의 참여로 먼저 경선을 준비해온 박진 예비후보는 중도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종로구 공천에서도 두 사람이 맞붙어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 지난 2월 20일 공천면접장에서 박 예비후보는 “동생(오 후보)이 치고 들어오니 어떡하겠느냐”고 하소연(?)했고, 이에 오 후보는 “형님이 양보까지 해주면 더 좋은데....”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박 예비후보는 이번에도 또 한 번 오풍(吳風)에 밀려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하다.” - 2009년 5월 11일, 여성취업박람회
오 후보 정치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여성이 함께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장 경선 승리 후 맞붙은 그의 상대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당초 맹형규, 홍준표 예비후보의 접전이 예상됐던 당내 경선에서 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무기로 승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강금실 후보 못지않게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내며 시장에 당선됐다. 4년 뒤 치러진 재선에서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0.6%의 초박빙 승부를 벌인 끝에 신승을 거뒀다.
연극연출가이자 대학 교수인 아내와 두 딸에 대한 오 후보의 남다른 가족사랑도 유명하다. 과거 저서에서 “나는 사실 크게 아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딸 둘이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 쪽”이라며 딸 바보 면모를 과시했던 그는 이후 ‘여자가 행복해지는 도시’, 일명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추진해 교통, 주거, 문화 등 도시정책 전반에 여성 친화적 사업을 추진, 성과와 평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젊은이들이 인생을 설계할 때 보람과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르완다 키갈리 일기’, 알에이치코리아, 2015
시장 시절 서울특별시의 무상 급식 정책을 놓고 시의회와 팽팽하게 맞선 오 후보는 직을 걸고 사안을 주민투표에 부쳤으나 개표선 미달에 그친 투표율로 사퇴했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책을 통해 “민선시장으로서 부여된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큰 죄임이 분명하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뒤 “그래서 더 큰 부담감을 안고 늘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여 못다 한 소임을 다 할지 고민했다”며 향후 행보에 대한 목적을 명시했다. 영국과 중국에서 연수를 마친 그는 페루와 르완다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느낀 다양한 정책적 구상을 제시하는데, 그중 청년실업에 대한 견해가 눈길을 끌었다.
오 후보는 르완다 봉사활동 일기를 담은 책에서 “인력시장 미스매치의 원인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제언하며 “공기업을 선호하는 취업 경향을 분석해 보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기술한 뒤 “직업은 단지 생활비를 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요, 존재 가치의 현실화이기에 쉽게 청춘을 던지지 못하고 망설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는 경험이 쌓이면 연관 직종으로 전직할 수 있는 커리어 노마드의 시대”라고 규정하며 “어떻게 해야 젊은 층의 자존감을 충족시켜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에 아픔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 청춘의 미덕이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보다 현실적 고민을 살핀 문제 제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작년 11월 12일 한 강연에서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 이란 말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며 “(청년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약하다.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만 지내보면 금방 국민적 자부심을 깨닫게 된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며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한 네티즌은 “직접 고시원에서 한 달만 살아보라”고 댓글로 일갈했으며, 이재명 성남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오세훈이 기득권의 갑옷을 벗으면 헬조선 소리 나오는데 하루도 안 걸릴 겁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초선의원일 땐 정치를 잘 몰랐고, 시장일 땐 행정에만 몰입해있어 정치를 제대로 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2015년 5월 8일, YTN 인터뷰
그는 10여 년의 공직생활을 두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되짚고, 이번 4·13 총선 출마를 기점으로 이때 쌓은 경륜과 노하우를 공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밝혀왔다. 종로에서 현직 5선 정세균 의원과의 대결을 앞두고 오 후보는 시장 시절 자신이 추진한 역점사업 중 종로구에 기반에 둔 사업과 성과를 강조하며 출마선언에서 “국민의 기대와 성원에 새로운 정치로 응답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시장 임기를 매조지 못한 그의 과거 판단의 경솔함을 두고 쏟아지는 비난과 늘 새로운 전략과 참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도전적 행보를 이어가는 그에 대한 기대는 모두 오세훈 후보가 감당해야 할 무게이자 숙명이다. “무엇인가를 의논할 때는 과거를, 무엇인가를 누릴 때에는 현재를, 무엇인가를 할 때에는 미래를 생각하라”는 프랑스 작가 조제프 주베르의 격언만큼이나 시제를 넘나들며 새로운 정치를 구상하고, 제안하는 그가 앞두고 있는 종로혈투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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