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 시스템 전면 부정…전셋값 상승 부추길 듯
"뾰족한 수 없는 금융권, 가계빚 줄여 생색내기"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이민찬 기자] 아파트 중도금 등 집단대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설업계의 목소리에 금융당국은 오히려 대출을 죄는 쪽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17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차원의 발제문은 집단대출을 할 때 "소득과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집단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금리를 올려서 집단대출을 해주는 사례가 있었다면 이제는 분양계약자들의 가계신용도나 현금흐름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종합, 시장의 움직임을 더 지켜본 후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이에 건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건설사의 신용도를 기반으로 분양보증을 받고 이를 토대로 집단대출을 해오던 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집단대출'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되고 모두 개인의 주택담보대출이나 분양권을 담보로 한 대출 개념으로 전환되게 된다.
또 건설사의 신용도는 분양에 앞서 땅을 확보할 때부터 필요한 프로젝트파이낸싱에서만 활용되고 분양시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분양 계약자 개개인이 건설사의 신용도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금리 할인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로인해 공개적으로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을 개인 담보대출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할 경우 가뜩이나 심상찮은 분양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택 업계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출 규제는 국내에 정착된 선분양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지적과 함께 주택 공급 감소와 매매 수요 위축으로 이어져 전셋값이 지금보다 상승하는 등 주택 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주택공급규칙에 중도금과 잔금을 내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금웅권이 집단대출을 미루고 이자만 높아져 수분양자들이 온전히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금융권이 우리 법과 선분양 시스템을 부정하고 주택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계 부채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단대출은 다른 부채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집단대출을 받는 사람, 즉 아파트 분양자들은 전세나 월세 등으로 살고 있는 분들"이라며 "입주 시기가 되면 이 돈으로 대출을 갚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부실한 대출로 모는 건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택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금융권이 문제점을 보완할 상품 개발 등은 게을리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지도 않고 시공사와 발주처에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면서 "가장 쉬운 집단대출 규제로 가계부채를 줄였다는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협회 관계자는 "아직 주택 공급이 더 필요한 시기고 시장은 이미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됐다"면서 "무턱대고 대출을 규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규제를 풀어야 주택시장이 정상화되고 전·월세난도 해소될 덧"이라고 덧붙였다.
주택업계에서는 집단대출 연체율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가계부채 부실을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주택건설협회가 금융감독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2월 집단대출 연체율은 0.76%였는데 연말 들어서는 0.45%로 줄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집단대출 금액이 늘어난 것 역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시행 이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일순간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은행권 자체적으로 입지나 분양가능성 등을 따져 리스크를 관리하라는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높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은행이 사업성을 따지는 과정을 투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데다 당국의 규제 탓에 주택시장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는 점을 고려치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전날 주택금융관련 공동 협의체를 구성했다. 민간전문가들과 함께 분기에 한번씩 회의를 열어 주택시장의 동향을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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