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미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회사 샌디스크를 간접 인수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려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 풀 꺾였다. 중국 대표 반도체 국유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샌디스크 인수·합병(M&A)에서 사실상 발을 뺐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인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정면으로 맞서려던 중국의 야심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은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유니스플렌더가 미국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생산 업체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15%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국가 보안 문제로 이번 거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통보한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로써 웨스턴디지털은 37억8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4조7000억원 상당의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이 자금을 포함해 190억달러(약 23조원)에 샌디스크를 인수할 예정이었다. 칭화유니그룹은 웨스턴디지털의 실질적 최대주주에 오른 뒤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려고 했으나 이번 거래를 포기한 셈이다.
메모리 분야 '알짜' 기업인 샌디스크가 중국 자본에 넘어갈까 노심초사했던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으로서는 당분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시간을 벌게 됐다는 평가다.
중국이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진 건 지난 2013년 원유를 제치고 반도체가 수입 1위 품목이 되고부터다. 중국은 연간 2300억달러에 달하는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몇년 새 중국은 칭화유니그룹 등 국유기업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M&A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이렇다 할 '메가 딜'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도 D램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했으나 미국 정부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거부하면서 실패했다.
칭화유니그룹이 샌디스크 인수전에서 발을 뺐지만 이번 거래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웨스턴디지털과 샌디스크가 인수 계약할 당시 2가지 옵션을 걸었기 때문이다.
웨스턴디지털은 유니스플렌더 투자 유치에 성공할 경우 샌디스크 주식을 주당 86.50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이 중 85.10달러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웨스턴디지털 보통주 0.0176주로 지급할 예정이었다. 투자 유치에 실패할 경우 웨스턴디지털은 현금 67.50달러와 웨스턴디지털 보통주 0.2387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주요 주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 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날 소식이 전해진 이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웨스턴디지털 주가는 42.77달러까지 떨어졌다. 하루에만 7.2% 빠졌으며 올 들어서는 29% 급락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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