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예산에 민감..다수당에 유리한 국회법도 한 몫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여당이 한중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경제활성화·경제민주화법안을 2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야당과 전격 합의하면서 정기국회 성과에 대한 부담을 다소나마 덜게 됐다.
여당이 17일 오전 정부와 협의를 통해 '한중FTA협의체를 당정만으로 구성하고 법인세율 인상은 불가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을 때만해도 이날 오후 예정된 원내지도부간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었다. 야당을 자극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논평을 통해 당정합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전격 합의한 배경과 관련해 여당이 고육책으로 내놓은 법안·예산안 연계전략이 통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야당이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내년 예산안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한 전략이 효력을 봤다는 얘기다.
당정이 '법인세율 인상''누리과정 예산 국고지원' 등 야당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예산안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해 야당 내부에서는 여당의 연계전략을 비판하면서도 예산 처리가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 현역 의원들 역시 예산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여당의 예산·법안 연계 카드의 방점은 법안에 찍혀 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산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 우리가 원하는 법안은 처리가 어려워진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활성화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예산안 처리도 미룰 수밖에 없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달리 보면 여당이 예산안에 비협조적이면 야당이 어쩔 수 없이 법안 처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당이 예산안으로 야당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은 현행 국회법도 크게 기여했다. 법안 처리는 소수당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한 반면, 예산안은 본회의 자동부의 장치가 마련돼 다수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사가 법정시한 내에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별도 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과반 의석 이상을 차지하는 여당의 뜻대로 통과시킬 수 있다.
여당이 전날 당정협의에서 '수정 예산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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