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매년 여름이면 다시 인기차트에 오르는 한 가수그룹의 노래가사이다. 예나 지금이나 해변은 평범한 우리 삶의 일상을 잊지 못할 순간들로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해변은 추억을 담은 영화나 음악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도 한번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의 해변은 침식이 심화되면서 위협받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2014년에 실시한 총 250개 해안에 대한 연안침식모니터링 결과 약 44%(109개소)가 침식이 심각하거나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어항, 항만 등의 조성과정에서 인공시설물의 설치로 발생한 경우가 더 많다. 우리나라 전체 해안선 14,962㎞로 섬지역을 제외한 해안선 길이는 7,755㎞이다. 이 중 절반을 넘는 51.4%(3,982㎞)가 자연해안선이 아닌 인공해안선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정부는 연안침식에 대해 주로 연안정비사업을 통해 대응해 왔다. 2000년부터 시작한 연안정비사업은 연안의 침식을 줄이고 친수공간을 조성하는 데 상당부분 기여해왔다. 그러나 침식이 우려되는 연안에 대해 사전적으로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제 연안관리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국, 미국, 호주 등과 같은 주요 연안국에서는 도시계획 등과 같은 공간관리 수단을 연안침식관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의 해안선관리계획(Shoreline Management Plan)은 전체 연안의 침식을 평가ㆍ예측해 침식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개발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안정비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고 연안침식문제를 보다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4년에 '연안침식관리구역 제도'를 도입했다. 연안침식 관리구역은 침식피해가 심각하거나 우려되는 지역을 위주로 지정하며 침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지역도 포함한다.
이 구역에서는 침식을 유발시키는 행위가 제한되며 침식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모니터링에 근거해 침식 대응사업을 선제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연안침식관리구역의 지정을 통해 사전적이고 통합적인 침식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8월 해수는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삼척 맹방해변, 울진군 봉평해변, 신안군 대광해변, 세 곳을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연안관리법상 지정기준을 바탕으로 과학적 타당성, 정책적 효과성,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선정했다. 이 해변들은 대규모 골재 채취, 어항시설 설치, 발전소와 항만시설 설치 등으로 침식이 심각하거나 침식이 우려되는 지역을 포함한다.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한 해변은 정부가 집중관리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는 침식을 유발하는 행위가 제한되고 침식대응에 관한 관리계획을 수립한다. 이 계획은 침식대응에 관한 과학적인 분석과 침식대응 수단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관리계획은 연안침식관리에 관한 종합적인 로드맵인 셈이다.
연안침식관리구역은 과거의 연안정비사업에 비해 과학적 분석, 넓은 지역에 대한 고려, 장기적 안목을 전제로 효과적인 정책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당장의 효과를 바라기보다는 침식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지혜로운 자세와 느긋함이 필요하다.
연안은 본연의 생태적ㆍ환경적 기능을 지닌 공간이며 추억이 담긴 우리 삶의 터전이자 개발의 과정이 아로새겨진 역사적 공간이자 우리 삶에 여유를 주는 힐링공간이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연안의 위대한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면 연안은 침식으로부터 얼마든지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새로운 정책적 시도의 하나가 바로 연안침식관리구역이다. 이 제도가 과거 연안침식관리의 한계를 극복해 우리연안을 지키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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