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저는 좋은 식당을 찾아가는 일을 참 좋아합니다. 식탐은 탐욕 가운데에서도 가장 수준 낮은 것이라는데, 어릴 때 궁색했던 탓인지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쉬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주말에 괜찮은 식당을 탐험하는 걸 적잖이 즐깁니다. 이 탐험을 위해 맛집 가이드들을 뒤적이긴 하지만 전문 미식가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미식가들이 상찬하는 오래된 맛집들 가운데에는 전통의 맛을 자랑하지만 서비스나 분위기가 좀 뒤떨어지는 곳들도 많은데, 제겐 식당의 서비스나 실내 분위기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에도 자주 가는 편입니다. 맛과 서비스가 어느 정도는 보장되니까요.
얼마 전 조카가 전문가에게 일대일 입시 상담을 받는 자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는 것이 날이 갈수록 왜 이렇게 점점 어려워만 지는지 모르겠다고 제가 투덜대자 그 전문가는 자영업이 몰락하면서 대학 입시가 더더욱 힘들어지는 거라고 확언했습니다. 가게 하나 열어 한 가족 먹고살 수 있던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 죽기살기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만 하고, 그러려면 명문대학의 졸업장은 필수라는 것이지요. 그는 갑자기 제 조카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좋은 대학 못 가면 좀 덜 버는 거였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굶어 죽을 수도 있단다"라고요. 조카의 눈빛이 자못 비장해졌습니다.
제가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경영전략이라는 학문은 기업의 존재이유를 경쟁자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의 창출이라고 가정합니다. 이 가정은 기업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좀 더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경제체계는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양질의 재화를 생산해내는 합리적인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똑똑한' 세계에서는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비효율적인 경쟁자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나갑니다. 이 같은 설명은 세련되고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설명에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과 그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사실 우리의 고객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우리 회사가 경영하는 할인마트 때문에 문 닫은 슈퍼의 주인은, 슈퍼가 문을 닫아 돈이 없는 탓에 우리 회사가 만드는 LCD TV를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이 역설, '우리가 경쟁에서 너무 크게 이기면 고객을 잃게 된다'에 주목한 학자들은 무한경쟁을 통해 몇몇 승자가 큰 이익을 누리게 되면, 그 결과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유효수요가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수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케인스주의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학자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훼손된 소득의 형평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경제위기의 위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주장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이런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세금을 낮추라고 주장하는 대신 높은 소득세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트의 영업시간이 제한되어 '불편한'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대기업이 요식업에서 철수하여 괜찮은 식당 몇 개를 목록에서 지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다가올 선거들이 이런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토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제 반드시 그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엔 저도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개업한 조그만 일본 라면집에 들러볼 작정입니다. 그 녀석 아들이 제 아들과 동갑이니 둘이 친구가 될 수도 있겠네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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