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 몇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
■ 시인 도종환 읽기(4) =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좀 둥글게 살라고. 그렇게까지 모나고 질기고 사납게 살 거 뭐 있느냐고. 그때마다 그는 반문했다. 그 둥글고 굽어진 것들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왔느냐고. 누군가는 원칙적이고 곧은 자세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당한 지 10년. 그는 우리나라 고건축 답사를 갔다가 부챗살처럼 퍼지는 추녀의 곡선미는 휘어진 나무가 아니라 곧게 다듬은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띠를 묶고 거리에서 함성과 구호를 외치며, 그는 직선을 주장해왔지만 그 직선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원칙과 소신이 세상에 어떻게 앉아있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추녀를 떠받치는 단단하고 곧은 기둥처럼, 묵묵히 그러나 굳세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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