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용 주택 취지 무색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새집과 헌집, 그 차이밖에 없어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원룸에 거주하는 차민창(가명ㆍ29)씨는 최근 인근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이사를 가려다 포기했다.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이 보증금 2000만원에 월 35만원인데 비해 도시형생활주택은 2000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 6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김씨는 "새 건물이다보니 방도 깨끗했고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방)크기가 비슷하고 교통ㆍ편의시설 이용도 똑같아 굳이 옮길 필요를 못 느꼈다"고 털어놨다.
서민주택 보급이라는 큰 틀에서 시작된 도시형생활주택이 정작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기존 원룸과 크기가 비슷한 데다 임대료마저 10~20% 이상 비싼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도시형생활주택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인근의 일반 원룸이나 고시원 임대료까지 자극하고 있다. 신림동 H공인 관계자는 "도시형생활주택은 서민용 상품이라기보다 투자자들을 위한 수익형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1~2인 가구층을 흡수하고 전세난까지 해결하려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설명이다. 길 잃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수익률 높은 상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원인이 됐다.
이렇다보니 속타는 쪽은 저소득층이다. 임대료가 저렴하던 고시원은 규제 강화로 신규 공급 물량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기존 고시원과 원룸들은 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도시형생활주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결국 비싼 임대료가 걸린 도시형생활주택으로 몸을 옮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늘어나는 공급분에 비해 분양가마저 치솟고 있는 상황도 한몫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에 위치한 도시형생활주택의 3.3㎡당 분양가는 176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00만원 올랐다. 수익형 부동산의 분양가가 올라갈 경우 수익률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주들이 임대료를 매번 올리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조민이 에이플러스리얼티 센터장은 "도시형생활주택이 전ㆍ월세난을 완화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주차장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물량이 쏟아지다보면 향후 도심 슬럼화나 주차난 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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