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무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떨쳤던 동시에 가장 잊고 싶은 기억도 남긴 대회였기 때문.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시절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맹활약은 그를 맨유의 일원으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특히 2004/2005시즌 AC밀란과의 준결승 2차전 선제골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의 영입을 결심하게 한 결정적 장면이었다.
맨유 이적 후에도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 첼시, 아스날 등을 상대로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덕분에 '빅매치의 사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화려했어야 할 순간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2007/2008시즌 첼시와의 결승전 명단에서 아예 제외되고 만 것.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온 그였기에 언론과 전문가를 포함한 대다수가 그의 출전을 예상했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이 더 심했던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팀은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박지성은 지난 3년간 좀처럼 그때의 기억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무덤덤한 척했고 감독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선발 출장했음에도 0-2로 참패했던 아쉬움만을 밝혀왔을 뿐이었다.
박지성은 22일(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영자 일간지 '더 내셔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처음으로 당시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때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이다. 결장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왜 나지?'란 생각만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이들을 속상하게 했고, 나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좌절은 잠시였다. 그는 "결승전 다음날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결승전에서 뛰고 싶다면 나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노력의 결실이 찾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선발 출장했다.
박지성은 29일 생애 세 번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선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2년 전 패배의 아픔을 안겼던 바르셀로나. 선발 출장이 유력하다. 3년 전 좌절의 대상이었던 첼시와는 이미 8강에서 만나 멋진 결승골을 뽑아냈었다. 이번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지난 기억을 털어내겠다는 각오다. 내년 6월까지 맺어진 맨유와의 계약 연장 여부도 그 뒤에 결정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결승전에만 집중하고 있다. 재계약 문제와 내 미래에 대해선 그 이후에나 생각해 볼 것"이라며 "축구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나는 맨유에서 6년째 지냈고 이 팀이 좋다"며 소속팀을 향한 애정을 밝히기도 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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