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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궁 밖에 내몰린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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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이순신, 두 위인을 왜 같은 공간에 모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종로 거리는 40여년 전부터 이순신 장군이 지키던 영역으로 그동안 오른손에 든 칼이 항장(降將)같다는 일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전경들보다 더 위엄 있게 임무를 완수했지요.


숱한 민주화 전사들이 기세등등한 스크럼으로 밀어붙일 때도 언제나 청와대방어 최전선에서 부동의 자세로 굽어보는 장군을 보곤 주춤했습니다. 심지어 신군부에서 동원한 탱크들까지 장군의 위용에 질려 포 한방 쏘지 못했죠.

그런 장군에게 얼굴도 모르는 200년 전의 선왕을 경호하는 임무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목숨 바쳐 조선의 명줄을 300년이나 늘려 준 것도 모자라 장군의 동의 한마디 구하지 않고 버거운 일을 떠맡긴 것이죠.


세종대왕도 그렇지요. 매일 꺼내보는 만원권의 초상화를 통해 우린 흠모하고 있다고 봅니다. 해마다 한글날을 정해 공덕을 찬양하고 일상으로 한글을 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또 거리이름이 세종로이고 세종문화회관을 지어 놓고 기념하고 있지요.

지방에 별도로 ‘세종시’까지 따로 만들어 줄 정도로 ‘세종프리미엄’이 붙다보니 오히려 ‘세종인플레’가 돼버렸습니다. 결국 ‘과공은 비례(過恭非禮)’가 되고 말았지요. 5000년 역사에서 숭상할 인물이 그렇게 없었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에게 널리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침내 대왕을 궁 밖으로 내몬 현장에 한번 서 보십시오. 가까이는 광화문을 가리고 멀리는 경복궁과 북악의 아름다운 조화를 파괴하는 10여m 넘는 동상의 부조화가 답답할 것입니다. 옛 총독부건물을 헐어내고 얻었던 여백의 미에다 ‘디자인 서울’이란 구호로 덧칠을 한 셈입니다.


지난 수십년 간 그 자리에 열병하듯 늘어섰던 아름드리 100년생 은행나무들에서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는데 7억원이나 들여 다들 뽑아서 뒷길로 내보낸 발상과 이유가 자못 궁금합니다.


이제 서리가 내리고 삭풍이 부는 시절이면 참으로 황량할 것입니다. 때론 책장 위에 수북한 눈 더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앉아있어야 하는 대왕의 용상은 흉물스런 눈사람에 불과합니다.


해가 뜨거워도 마찬가집니다. 일산(日傘)도 차일(遮日)도 시종도 없이 길바닥에 홀로 나앉은 대왕의 풍모는 겉으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더라도 속으론 열 받은 청동대왕으로 용포 입은 노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요즘 동네 곳곳 작은 공간마다 정말 분수에 맞지 않는 분수들이 넘쳐납니다. 시청 앞 광장이나 청계천의 여름날, 치솟는 분수 앞에 모여든 철없는 동심을 보고 분수만 만들어 놓으면 시민들과 저절로 소통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겠죠.


그 세종로의 그럴듯한 분수는 고작 4월부터 10월 말정도까지 7개월만의 볼거리입니다. 그 기간에 장마철과 비바람 부는 날이 한 달은 되겠죠. 결국 일 년의 반은 소용없는 시설에 불과한 게 분수입니다.


그래서 지나칠지 모르지만···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지난 광우병파동때 하도 광화문 방어에 혼이 난 인사들이 몇몇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격렬한 시위대의 청와대 행을 저지할 수 있겠는가?” 논의에 붙였겠죠.


당시는 장군이 도로 중앙에서 좀 비켜 서 있었기에 장군의 눈길을 피해 우회해서 돌파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앞으론 시위대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겁니다. 갑옷 입은 이순신 장군이야 보기에 따라 흡사 중무장한 전경과 차이가 없는 적개심을 불러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선봉대가 한창 독서에 몰입하고 계신 세종대왕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화염병을 던지면서 밀어붙인다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그들은 역사와 어른에게 존경심도 하나 없는 망나니들로 비쳐질 테니까요. 청와대로 가기도 전에 불충한 백성들로 전락되고 맙니다.


안방의 국민들이 TV화면을 통해 그걸 보면 저절로 공분을 자아낼 장면이 되니 그날은 좀 호되게 몰아쳐도 이해를 해 주겠죠?


든든한 나무들이 사라진 거리의 두 동상은 누구의 눈에는 文武의 조화로 흐뭇하게 보일지 모르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어색한 동거로 위압스럽기만 합니다. 경복궁 대전에 앉아계시는 게 훨씬 어울리는데 후손을 잘못 만나서 대왕께서 장차 험한 꼴을 많이 볼까 저어합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을 수 없고, 지상에는 두 개의 권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광화문 사거리에서 잠시 떠올려 봅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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