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여신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투자자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돈줄'을 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고위험 회사채도 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애널리스트가 놀랄만한 금리를 제공하기 때문.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자 투자자들이 안정성보다 고수익을 찾아 움직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들어 유럽 투자자들이 사들인 회사채는 총 268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1995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 때문에 유럽 기업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이다. 심지어 일부 투자자들은 디폴트 위험이 가장 높은 정크본드도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다.
고위험 회사채 시장에 유동성이 몰리자 주식 신규상장(IPO) 시장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유럽 주식시장 책임자인 엠마뉴엘 게럴트는 "최근 회사채 시장에 투자자금이 몰리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자금 유입과 시장 회복 속도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유동성이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극심한 신용경색을 나타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유럽 금융시장이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유럽 기업들은 미국에 비해 은행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 이들은 여전히 자금 조달의 70%를 은행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은행 여신을 이용한 자금 조달이 30%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채권 발행의 급증은 자금시장이 유명무실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투자자들이 회사채 시장으로 발을 돌린 것은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경기 바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리스크 회피 심리가 희석된 것도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아비바 인베스터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로저 웨브는 "기업들이 다른 투자자산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라며 "고수익이 투자자를 유인하는 셈"이라고 판단했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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