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美 정치상황 반영된 것...재협상은 쉽지 않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지난 9일 한미FTA에 대해 "현재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이 없다는 정부 방침은 변함이 없다"며 "(커크 내정자의 발언은) 그동안 미국 민주당에서 계속해서 나오던 얘기"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주미 대사관이 미국 의회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커크 지명자의 발언배경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야당 등 정치권은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미국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미 FTA비준안이 전략적 관점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해달라"며 한나라당의 4월 비준입장에 반대했다.
자유선진당도 민주당에 동조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아예 한미FTA 백지화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미국의 발언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재협상 요구 뒤에 감춰진 배경을 살필 것을 주문했다.
박헌준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한미FTA 비준을 두고) 글렌 허바드(Glenn Hubbard) 미국 콜롬비아 비즈니스스쿨 학장과도 얘기를 나눴다"며 "미국의 정치가들이 의회 비준을 위해 벌이는 정치적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한미FTA에 불만이 있는 정치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전작업에 불과한 발언들이라는 것이다.
박헌준 교수는 "전략적으로 한미FTA를 하자는 것이 합의된 만큼, 지금은 전술적인 단계에 와있다"며 "이 상황에서 밖에서 너무 떠들면 우리측의 협상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미국내 정치상황을 보다 깊숙히 살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미국 민주당과 노조의 특수관계 때문에 나오는 발언"이라며 "민주당은 원래 금속노조와 중요한 관계를 맺어 (자동차 수입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실제 재협상에 나설 경우 적지 않은 부담을 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박노형 고려대교수는 "국제법적으로 재협상 요구를 막을 수단은 없다"면서도 "협정문에 서명을 함으로써 양국이 헌법에 따라 비준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면 정치적으로 재협상은 힘들다"고 설명했다.
박노형 교수는 이어 "만일 한미FTA가 재협상에 들어간다면 미국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비우호적행위를 했다는 긴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라며 "한미FTA는 더 이상 당사국끼리의 사안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있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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