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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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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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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면서 책 한권을 건넸습니다. 새해들어 처음으로 발간한 ‘황소걸음처럼’이었습니다. 이 책은 황소처럼 살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를 담은 저 자신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내공을 쌓으면서 차근 차근 앞으로 나가자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은 친구가 의미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황소걸음처럼’이라는 제목을 택하게 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황소에 대한 저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겸손하게, 겸허하게), 뿔 외에는 신체의 다른 부분은 싸움의 무기로 삼지 않으며(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변칙을 동원하지 않고), 패배하면 깨끗하게 물러나는(헐뜯지 않고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황소의 싸움원칙을 얘기했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신뢰를 쌓아가는 사회는 그런 원칙이 존중될 때 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이왕 ‘황소걸음처럼’이라는 책을 썼으니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한번 보라는 권유였습니다. 워낭은 소나 말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경제위기를 두려워하고 세상이 시끄럽지만 이 영화를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청소되더라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님이 써 놓은 감상문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팔순 노부부가 소 한 마리에 의지해 논밭을 일구며 사는 일상일뿐인데 이처럼 감동을 주는 것은 30년지기 최노인과 소의 동행을 전혀 과장없이, 아무런 분칠없이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은 때문입니다.


보통 소의 수명은 15년이라고 합니다. 최 노인의 소는 무려 마흔살입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노쇠한 소이지만 최 노인에게는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노인은 귀가 어두우면서 자신의 분신과 같은 소의 워낭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듣습니다.


또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러 날마다 산을 오릅니다. 혹 소에게 해가 될까 논에도 절대 약을 치지 않습니다. 소 역시 늙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최 노인이 고삐를 잡기만 하면 태산같은 나뭇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 서로의 인연이 끝나감을 예감한 노인과 소의 슬픈 눈빛과 힘겨워하며 겨우 겨우 걸음을 옮기던 소의 뒷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제 주인에게 헌신하다 말없이 세상을 떠난 소의 일생, 이제 소는 갔지만 소가 남기고 간 그 워낭소리는 여전히 최 노인의 귓가를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땅의 소들은 늘 그렇게 자신의 전부를 주고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렇듯 가슴 찡해하는 걸 보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칩니다. 소는 밭을 갈거나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람보다 낫습니다. 정말 아낌없이 주고 가는 동물입니다.


영화의 끝에서 맞이하는 소의 죽음에서 조용했던 영화관이 코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 얘기를 꺼냈던 친구 역시 함께 간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장면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농부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소였습니다. 국민소득이 형편없이 적고 생활자체가 어려웠던 시절 소는 농부에게 재산목록 1호나 다름없었습니다. 농촌출신으로 40대가 넘어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스토리만 듣고서도 저의 눈시울이 붉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른데 아침부터 무슨 뚱딴지같은 황소얘기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황소걸음으로 걷다가 정해진 시간에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황소처럼 걷더라도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판단하면 그것이 불황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노인과 소 한 마리의 얘기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지혜를 배우면 어떨까요?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사회는 작은 신뢰, 서로를 위해주는 사소한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정치의 세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통의 동맥경화 상태가 풀려 서로 존경하고, 존경받는 정치가 가능해 질 것입니다. ‘워낭소리’의 주인공처럼 황소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 갔더니 정치인들은 국민의 말을 세 번 알아듣는다고 하더군요.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할 때, 밀린 법안들을 빨리 처리하라고 할 때(몇개 골라서 날치기 통과한다), 말싸움을 좀 그만하라고 할 때(말싸움 대신 몸싸움을 한다)는 그만큼 이해를 빨리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분들 때만되면 입버릇처럼 국민들을 위해 황소같이 일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닙니다. ‘워낭소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왕 국민의 머슴을 자처한 분들이니 워낭을 달면 소같은 일꾼이 되고, 신뢰가 싹트며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일 수(대신 정치 불신지수는↓) 있을 것입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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