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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찬주, 온라인 공간에 퍼지는 묵향(墨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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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재' 생활하는 불교소설의 대가, 李총리 전남지사 시절 인연
'이순신의 7년' 3년간 실어…보성·강진군서도 잇단 연재
"지자체 홈페이지에 장편소설 연재…수행하듯 글 쓰죠"

소설가 정찬주, 온라인 공간에 퍼지는 묵향(墨香) 소설가 정찬주 (C) 백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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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소설가 정찬주(66)씨는 전라남도 화순 쌍봉사 옆에 집을 짓고 산다. '이불재(耳佛齋)'라고 했다. 그는 2001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화순으로 내려갔다.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점심 때까지 글을 쓴다. 오후에는 글을 쓰지 않는다. 쓴 글을 퇴고하거나, 방문하는 손님들과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한다. 정찬주씨는 "소설을 쓰는 일은 수행과 같다"고 했다.


"수행을 할 때 그 강도가 강할 때도 있고 느슨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쉬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스님들에게는 공휴일이 없다. 나도 글 쓰는 일에 공휴일과 명절을 두지 않는다. 쉬지 않고 수행하듯 글을 쓴다."


그는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글을 많이 연재했다. 이낙연 총리(67)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이 총리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불재를 찾아왔다. 정찬주씨는 그에게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에 대한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10여년 가량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 전라도 곳곳을 누비며 취재를 마친 뒤였다. 이 총리는 전라남도 홈페이지에 연재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 총리가 도지사에 당선된 다음 연재가 시작됐다.


"나한테는 이낙연 총리가 귀인이다. 신문사도 지면에서 소설을 다 없애고 있는데 3년간 연재를 했다."


정찬주씨는 200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전라남도 홈페이지에 '이순신의 7년'을 연재했다. 매주 40매씩 썼다. 이순신의 7년은 지난해 2월 출판사 작가정신을 통해 일곱 권으로 발간됐다. 이순신의 7년은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을 그린다.


소설가와 장군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정찬주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소설 '칼과 술'을 전라남도 보성군 홈페이지에 연재했다. 칼과 술은 이순신과 그의 벗 선거이의 이야기다. 선거이는 보성 사람인데, 이순신의 7년에는 짧게 나온다. 보성군에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쓰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이순신은 함경도 조산보 만호일 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 선거이는 그때 이순신의 억울함을 알고 도와줬다.


이순신은 선거이와 평생 친구로 지냈다. 난중일기엔 이순신이 장계를 올려 충청 수사 선거이를 곁으로 부른 대목이 나온다. 선거이가 1596년 9월 중병에 걸렸을 때는 왜란 중에도 문병을 갔다. 정찬주씨는 "칼은 이순신과 선거이 장군의 의리, 술은 우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소설은 23일 작가정신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소설가 정찬주, 온라인 공간에 퍼지는 묵향(墨香) 강진군청 홈페이지

정찬주씨는 지금 강진군 홈페이지에 강진 사람 김억추 장군을 다룬 소설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를 연재하고 있다. 정씨는 "김억추가 영화 '명량' 등에서 무능하고 비겁한 장수로 그려지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김억추는 명궁수였다. 명량해전 때 왜선 선봉대 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화살 한 발로 죽여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정찬주씨는 앞으로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생각이다. "아소카는 정복왕이지만 칼링가 정복 후 살생에 회의를 느끼고 불교 철학을 실천했다. 부처가 갔던 곳은 작은 마을이라도 다 다녔다. 부처의 8대 성지에 석주도 세웠다. 불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정씨는 소설 쓸 준비를 하려고 인도를 열두 번 여행했다. 취재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올해 10월 인도 중부를 한 차례 더 여행할 계획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소설도 400~500쪽짜리 단행본으로 쓸 생각이다. "광주항쟁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그 짐을 내려놓고 싶다. 이미 30년 전부터 꾸준히 취재를 했다. 언젠가 꼭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찬주씨의 부채의식은 소설가로서 살아온 평생에 걸쳐 잠복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지금 한국 최고의 불교작가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1980년대를 수놓은 단편작가로서 1990년 '새들은 허공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남겼다. 섬세한 감성과 보석 같은 언어로 가득한 아름다운 소설들마다 광주의 슬픔과 분노가 저류(低流)로서 존재한다.



정찬주씨는 후배들에게 '수행하듯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글을 쓰지 않는 후배 작가나 시인들에게 '꼭 전(前)' 자를 붙이라고 핀잔을 준다. 소설 몇 편, 시 몇 편 쓰고 소설가라고 시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쓰다 보면 언젠가 명작이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쓴 작품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면 내일 쓰는 작품이 대표작이라고 생각하고 쉬지 말고 쓰라는 충고를 해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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