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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로 내한하는 몬테 카를로 발레단
최종수정 2019.05.16 09:54기사입력 2019.05.16 09:48

비운의 모나코 대공비 그레이스 켈리가 갈망한 자유를 닮은 신데렐라
1975년 설립된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가 뿌리, 1993년 마이요 감독 취임
6월12~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 발레팬들 앞에 첫선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이 6월12~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신데렐라'를 공연한다. 예술감독 겸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이끄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파격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무대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마이요는 1993년 감독 겸 안무가로 초빙돼 26년째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라보라예술기획과 마스트미디어가 주최하고 아시아경제가 후원하는 이번 공연에서도 파격에 가까운 무대의상과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무대를 통해 진보하는 현대 발레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주>



한정호 객원기자

세계적인 배우에서 모나코 왕국의 대공비(大公妃)가 된 그레이스 켈리는 '20세기의 신데렐라'였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극찬한 기품은 영화 '갈채'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으로 이어졌지만, 켈리는 "오스카를 수상한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이라고 술회했다. 시상식 당일 기쁨을 나눌 주위 사람이 없던 켈리는 의붓언니들이 무도회에 간 다음 홀가분함을 나눌 친구가 없던 신데렐라와 겹친다.


모나코 왕실에는 미국인에 대한 편견이 만연했고, 화려한 배우 경력이 있지만 궁내에서 본인 스스로 자존감을 확인할 기회는 드물었다. 세인들은 켈리의 인생을 "동화 같다"고 동경했지만 실제로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 잘 그려졌다. 주연 니콜 키드먼은 히치콕이 여배우 복귀를 제안했을 때 켈리의 복잡한 심경을 절묘하게 연기했다.


켈리가 자신감을 확인하는 또 다른 창구는 발레였다. 어려서 발레를 좋아하고 직접 익힌 켈리는 오랫동안 모나코 왕립 발레단 설립을 희망했고, 사전 정지 작업으로 1975년 모나코 왕립 그레이스 발레학교를 개교했다. 1982년 교통사고로 켈리가 사망하자 고인의 유지를 장녀 캐럴라인 공주가 이어받아 1985년 몬테카를로 발레단(Les Ballets de Monte-Carlo)을 부활시켰다.

외부에는 모나코가 카지노와 F1 그랑프리 개최지로 유명하지만, 1911년 흥행업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조직한 발레 뤼스의 본거지가 몬테카를로였음을 재천명하는 결단이다. 도시엔 이미 파리 오페라 극장을 설계한 가르니에의 손길을 탄 몬테카를로 가극장이 있고, 카르티에, 반 클리프 아펠을 위시한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은 사치와 허영이 어떻게 발레 예술을 보완하는지에 대해 도시에서 적극적으로 협업한 전통이 있다. 발레단 초창기엔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에투알)를 객원으로 불러 창단 공연을 하고 안무가 피에르 라코트를 비롯해 파리 오페라와 발레 뤼스의 전통을 고답적으로 전승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이후 도시를 벗어나 프랑스와 세계를 상대로 공연을 이어가는 투어링 컴퍼니로 탈바꿈했고, 우베 숄츠, 존 클리퍼드 같은 중견 안무가에게 신작 기회가 돌아가면서 조직의 색채는 파리 오페라와 조금씩 멀어졌다. 모나코 왕실이 프랑스의 영향을 받지만 기계적으로 등거리를 유지하는 외교 전략과 상통한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진정한 시작은 장크리스토프 마요의 감독 취임부터다. 1993년 불과 서른셋, 프랑스 투르 출신의 안무가를 수장으로 앉힌 다음 몬테카를로는 200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생 클래식 발레단으로 웅비했다. 마요는 발레와 클래식 전시와 워크숍, 강연회를 개최하는 국제 쇼케이스인 '모나코 댄스 포럼'을 2000년 창립했다. 1910년대 미술에 파블로 피카소, 대본에 장 콕토, 음악에 에릭 사티, 안무는 레오니드 마신이 맡은 발레 뤼스의 명성처럼 장르의 인재들이 이곳에 모여 화려한 오늘을 함께하자는 의지다.


마요 발레는 신고전주의 발레 거장인 안무가 게오르게 발란친이 강조한 "음악을 보라, 춤을 들어라"를 바탕으로 한다. 자신이 자란 투르의 음악학교에서 클래식을 배운 마요는 고전 음악이 전하는 고유의 정서를 댄서의 동작으로 세분해, 새롭게 나열하고 서술하는 독특한 스타일이 이어진다. 여느 발레 안무가들의 무브먼트와 비교하면 손가락이나 고개의 마임적 움직임이 노골적이거나 과장된 반면 허벅지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지는 스텝의 전개는 정통 클래식의 수법을 따른다. 그래서 빠른 속도의 음악에서도 댄서들이 상체를 이용해 자신만의 호흡을 조절하는 연기가 뚜렷하다. 흡사 오케스트라와 격돌하는 협연자가 자신만의 흐름을 쥐기 위해 자의적으로 템포루바토를 지탱하는 맥락과 닿는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신데렐라(1999)' '잠자는 미녀(2001)'로 이어지는 문학 텍스트 3부작에 사실상 마요 발레 미학의 정수가 집결됐다. "나이가 들면 작품도 성숙한다"는 식의 고준담론을 거부하고, "안무가가 20대에 천재이긴 쉽지만, 50대에도 그렇긴 어렵다"는 점을 활동 초기부터 밝혔다.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였던 부친이 전한 가르침이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기에 마요의 창작에선 거짓 없는 '인간 마요'가 보인다. 새로운 문물과 환경에 고통받는 발레 속 캐릭터는 중년 이후 신작 창조에 신음하는 마요의 반영이다.


신작 창작의 영감이자 메신저였던 무용수 베르니스 코피에테르가 발레단을 떠난 다음, 2010년대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한참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머스 커닝햄, 윌리엄 포사이스처럼 대가의 이론에 근거해 후대가 신작을 이어갈 정립된 이론과 전수 체계가 없어서, 마요가 은퇴하면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또 다른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몬테 카를로 발레단이 공연하는 '신데렐라'는 21세기를 전후한 장편 클래식 발레에서 유럽 비평가들의 극찬을 독식한 작품이다. 죽은 신데렐라의 어머니가 주인공이 돼 요정으로 분하는 상상력은 지하의 켈리가 부활해 현실을 온통 동화로 만들어버리는 설정에 준한다. 신데렐라가 토슈즈를 벗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자유가 켈리가 그린 왕실에서의 자유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금가루가 담긴 바구니에 몸을 담근 다음 모두가 마법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신이다. 12시 종이 울리기 전까지만이라도 스스로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던 인간 그레이스 켈리가 보이고, 전처를 잊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신데렐라의 부친에게서 노년의 마요가 보인다. 결국은 블랙 유머로 끝나는 각색의 결말이 켈리가 살고 간 신데렐라의 인생과 닮았다.


한정호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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