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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 위험천만 스포츠?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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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장애물 뛰어넘는 ‘움직임의 예술’
경쟁과 규칙, 순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지’가 핵심

[오해와 진실] 위험천만 스포츠?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체험기 아찔하고 화려한 액션으로 각인된 '파쿠르'를 자유의지 실천의 움직임이라 말하는 김지호 파쿠르제너레이션 코리아 대표는 파쿠르를 규칙과 순위에 얽매이는 스포츠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사진 = 윤진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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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아찔한 높이의 건물 사이를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높은 벽에 단숨에 매달려 이동하는가 하면 눈앞의 장애물을 가뿐히 피하는 날렵한 움직임. 가벼운 몸짓 이면엔 도심 속 지형지물이 가진 날카로운 위험이 도처에 사려있다. 매일같이 책상 앞을 지키며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와 걷기가 전부였던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화려한 액션, ‘파쿠르’. 나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날쌔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어느새 국내 파쿠르 일인자와 함께 건물을 뛰어다니며 저질 체력을 실감하는 비루한 현실로 이어졌다. 화려하지만 아찔하고, 멋있지만 위험해 보이는 움직임이 진짜 파쿠르의 본질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 최초 파쿠르 코치와 직접 현장을 찾았다.


놀이터에서 온전히 즐겁게 뛰어놀았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던 차, 김지호 대표(파쿠르제너레이션 코리아)는 취재진을 서울혁신파크에 마련된 파쿠르 놀이터로 초대했다. 취재에 앞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의 트레이서(파쿠르 하는 사람) 영상을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눈만 높아진 필자에게 놀이터 곳곳의 조형물들이 꽤나 만만해 보인 것도 잠시. 파이프 위에서 균형도 못 잡고 휘청 이다 계속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장애물 박스에서 몸을 돌리며 들어 올린 다리는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장애물 넘는 과정을 시연하되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김 대표의 태도였다. 그는 방금 배운 자세도 금세 까먹은 필자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장애물을 넘어보라 조언했다. 물론 그가 선보인 자세가 가장 최적화된 동작이었음은 수차례 엉뚱한 자세로 곤경을 치르고 나서야 어렵사리 확인할 수 있었다.


[오해와 진실] 위험천만 스포츠?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체험기 파쿠르의 기초동작을 배우면서 익숙하지 않은 장애물을 걷고 넘는 순간, 이따금씩 찾아오는 공포와 두려움은 이내 자신감과 도전의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사진 = 윤진근 PD

정해진 규칙 대신 각자의 방식 존중


길, 여정을 지칭하는 프랑스어에서 따온 파쿠르(parcours)는 당초 프랑스의 해군장교 조르주 에베르가 선상에서 체력단련을 위해 아프리카 원주민의 움직임을 연구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 져 있다. 그렇다면 파쿠르는 스포츠일까? 앞서 지난해 12월 국제체조연맹은 파쿠르를 새로운 공식종목으로 최종 승인한 바 있다. 아시아 최초로 파쿠르 코치 공인을 받은 김 대표는 운동이기에 앞서 파쿠르는 원래 경쟁, 규칙, 순위가 없는 움직임의 예술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한다. 이어 그는 과감한 액션, 아찔한 동작으로 대변되는 파쿠르의 화려한 일면 대신 자유와 모험에 기반한 자기수양적 측면을 역설했다. 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신체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자유의지, 필자의 엉성한 동작도 존중하고 주어진 장애물을 각자의 방식으로 뛰어넘기를 제안하는 그의 응원에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가 서서히 자신감과 도전의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경기도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다시 만난 그는 건물 곳곳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고작 하루 배운 실력으로 김 대표를 따라 해 보려던 필자의 과욕은 제 무게 하나 지탱하지 못하고 스르르 힘없이 풀리는 손가락의 반항 앞에 빠르게 식어 내렸고, 선망과 좌절의 눈빛을 감지한 김 대표는 이내 초보자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동작을 제시하면서 기초 체력 단련을 유도했다. 대중에게 각인된 묘기에 가까운 파쿠르 동작의 뿌리에는 주변 환경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극복하되 과시보다는 자기 발전적 메시지가 숨어있었는데, 지속가능한 파쿠르를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훈련이 수반되어야 함이 이를 반증한다.


김 대표 역시 화려함에 매료돼 파쿠르에 입문했노라 고백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본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야마카시>는 그에게 ‘자유’를 구현해내는 신체의 가능성을 일깨워줬고, 이후 동호회 사람들과 독학으로 파쿠르를 체득하는 과정에선 멋진 액션 너머 신체와 정신단련의 즐거움을 찾았다고 말했다.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 맺힌 굳은살은 16년에 걸친 그의 파쿠르 여정을 담은 단단한 기록이자 훈장이다. 매일 핸드폰과 컴퓨터 자판만 두들기던 필자의 손은 그의 동작을 따라 계단을 몇 번 짚고 오르내렸을 뿐인데 이내 빨갛게 살갗이 까졌고, 난간을 외발로 걷는 순간에는 두려움을 마시고 자신감을 내쉬라던 그의 조언이 무색하게 바로 밑 풍경이 천 길 낭떠러지로만 비쳤지만, 차츰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위험과 공포의 외연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해와 진실] 위험천만 스포츠?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체험기 위험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김 대표의 설명에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 대신 내 몸에 맞는 장애물 넘기를 차츰 시도할 수 있었다. 사진 = 윤진근 PD

수용 가능한 위험과 부상, 건강한 삶 위해 필요


아찔한 동작들을 익히는 과정에서 부상이나 큰 사고는 정말 없었을까? 김 대표는 자신 있게 그가 파쿠르를 시작한 이래 수련 과정에서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지는 등의 부상은 없었다고 말한다. 매일 두 시간 이상 꾸준히 전신의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을 지속하며 강인한 신체를 통해 위험과 부상의 범위를 좁혀나간 셈이다. 오히려 그는 수용 가능한 위험과 부상은 건강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험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그의 설명에 자기 신체에 대한 무지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파쿠르의 연마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상은 자가 항체를 강화하는 작업의 연장선으로 다가왔다.



파쿠르 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계단 앞에 서서 걷고, 뛰고, 네발로 오르기를 스스로 시도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져나왔다. 자유의지나 해방감 같은 거창한 말 대신, 그간 ‘스스로 몸에 얼마나 무지했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온 몸의 근육이 들고 일어나 일제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길고 긴 계단을 오르는 내내 몸에 사과하며 느낀 것은 파쿠르가 알려준 보다 명확한 내 신체 능력의 한계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기초체력 향상을 절절히 체감한 순간이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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