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표준화·가격통제 핵심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보험금 청구 제한
도수치료 등 지출 큰 비급여, 정부 별도관리
실손보험이 복마전이 된 것은 일부 병원과 환자의 도덕적 해이 등 개인적인 측면도 있지만 의료계 특유의 정보 비대칭과 실손보험 자체의 구조적 취약성 등 복합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실손보험 대수술을 예고한 정부도 현재 개인 일탈에 대한 처벌보다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개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급여에 대한 진료기준을 마련하고 단계적 가격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비급여 진료 시 참조할 수 있도록 질환별 의료행위에 관한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표준임상 진료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 규제와 관련해선 비급여정책심의위원회 등 기구를 만들어 비급여 기준과 적정수가를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급여 진료는 보건당국으로부터 진료대상과 진료량, 진료수가를 통제받는다. 하지만 비급여 진료는 가격·진료횟수·양 등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를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비급여 보고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표준을 만들 만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내역 등을 보고하는 제도다.
현재 백내장수술의 경우 동일한 백내장수술용 다초점렌즈에 대해 경남 소재 A의원은 비용이 30만원이다. 하지만 인천에 위치한 B의원은 900만원을 받고 있다. 도수치료의 경우 같은 서울 소재 병원에서 C의원은 10만원, D의원은 60만원을 받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의료기술로 인정만 되면 병원에서 비급여 진료 횟수와 가격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비급여에 관한 표준을 만들고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개편과 관련해선 비급여 보험금 비중이 큰 도수치료·체외충격파·주사제 등의 보장금액과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고 봤다. 급여와 비급여에 대한 자기부담률을 높여 과잉진료를 막아야 한다고도 했다.
요율조정주기 단축도 보험업계가 원하는 핵심 개혁안이다. 현재 실손보험 신상품의 최초 요율조정주기는 5년이다. 이를 3년으로 단축해 급변하는 의료환경에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손보험은 보장내용과 가입집단이 상품별로 유사하고 가입자 수 등이 충분히 유지돼 단기간 내 통계적 충분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일정 요건 충족을 전제로 실손보험 신상품에 대해 5년 이내 요율 조정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 개선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현재 비급여 개선의 핵심을 정보 비대칭 해소로 보고 있다. 비급여 보고제도와 실태조사 등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활용해 국민 의료비 관리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비급여 진료비 관련 핵심 지표를 개발하고 비급여 통합 포털을 만들어 비급여 관련 모든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1개월 진료자료만 보고하는 비급여 보고제도 범위를 확대해 분기나 전체 비급여 전산자료를 제출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며 "모든 의료기관 입구에 QR코드로 해당 의료기관의 비급여 항목과 표준가격을 공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명칭·진료기준·가격 등이 천차만별인 비급여에 대한 표준화도 진행한다. 앞으로 '백옥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 무분별하게 쓰이는 비급여에 대한 표준코드와 명칭을 부여할 예정이다. 진료기준은 의학회 등 의료계 자율규제 형태로 주요 비급여 항목에 대한 표준진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가격의 경우 가격 편차가 큰 비급여에 대해서는 의료계 협의를 통해 시장가나 급여가에 기반한 '비급여 참조가격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밖에 비(非)중증 과잉 비급여 관리 강화와 미용시장 관리체계 구축 등을 계획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실손보험 제도 개편 관련해선 차세대(5세대) 실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제 기능 강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건강보험업법과 보험업법 등을 개정해 건강·실손보험 제도 관련 중요 사항 결정 시 복지부와 금융위 간 사전협의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의료 남용을 방지하고 실손보험료 부담 완화를 위해 비급여 보장범위를 합리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진료와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혼합진료'에 대한 보험금 청구를 제한하는 방향도 논의 중이다. 도수치료 등 의료비 지출이 많은 비급여 항목을 정부가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 교수는 "새로운 의료기술과 신약 등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혼합진료 전면금지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질환 특성별 제한적 인정 기준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는 추가 논의와 이달 중순 공청회 등을 거쳐 이달 말께 2차 의료개혁 실행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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