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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하나에 3000원"…너도나도 다이소 '갓성비템' 벤치마킹

수정 2024.10.03 10:23입력 2024.10.03 08:21

편의점 업계, 스킨케어 제품 잇따라 출시
편의점 화장품 매출, 매년 두 자릿수 상승세
다이소도 화장품 라인업 지속 확대
알리익스프레스는 뷰티 전문관 오픈

국내 유통업계가 잇따라 뷰티 제품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화장품 판매전문점인 헬스앤뷰티(H&B) 스토어나 e커머스뿐 아니라 생활용품점과 편의점, C커머스(중국 e커머스)까지 뷰티 제품을 앞다퉈 들이고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초저가를 내세우는 C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달 26일부터 국내 뷰티 브랜드 전문관인 '뷰티 탭(Beauty Tab)'을 오픈하고 운영을 시작했다. 뷰티 탭은 국내 브랜드들의 뷰티 제품들을 판매하는데, 고객 맞춤형 뷰티 상품 추천(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알리의 뷰티 탭은 한국상품 전문관인 한국 상품 전문 채널인 '케이베뉴(K-Venue)'를 통해 선보인다. 케이베뉴가 셀러들에게 입점 및 판매수수료를 받지 않아 타 채널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는 타임딜 등 할인을 진행하는 한편, 광군제(11월11일), 블랙 프라이데이 등에 맞춘 프로모션도 진행할 예정이다.


같은날 이마트 계열의 편의점 이마트24는 화장품브랜드 플루와 에센스, 바디스크럽, 클렌징폼 등 뷰티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마트가 선보인 제품은 ▲플루 시카부스터 에센스100(5개입) ▲플루 바디스크럽 75㎖ ▲플루 클렌징폼 75㎖ 등 3종이며, 이 중에서도 에센스 제품은 미세침을 활용해 유효성분의 흡수를 돕는 마이크로니들 제품이다.

CU도 엔젤루카와 협업해 균일가 소용량 화장품 3종을 선보였다. CU가 출시한 제품은 ▲콜라겐 랩핑 물광팩 ▲순수 비타민C 세럼 ▲글루타치온 수분크림 등 스킨케어 3종인데, 가격은 모두 3000원으로 동일하다. GS25도 듀이트리의 마스크팩과 토너 등 4개 제품을 전국 매장에서 판매 중인데, 모두 1만원 이하의 가격이 책정됐다.

이마트24 매장에 전시된 플루 화장품. [사진제공=이마트24]
다이소 효과 …너도나도 가성비 화장품 벤치마킹

유통업계에서 1만원 이하의 가성비 뷰티 제품을 선보인 것은 생활용품전문점 다이소가 '뷰티 맛집'으로 부상하면서 폭발적인 매출 성장세를 보이면서다. 균일가 생활용품 전문점인 다이소도 지난해부터 화장품 제품의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다이소에 신규 입점한 뷰티 브랜드는 2022년 7곳에서 지난해 20곳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도 지난 7월까지 신규 입점 브랜드가 20곳에 달해 7개월 만에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다이소에 입점한 VT코스메틱스의 기초화장품 '리들샷'은 입소문을 타면서 품절 대란을 빚기도 했다.


그 결과 화장품 매출은 크게 늘었다. 다이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뷰티(기초화장품+색조화장품) 제품군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217% 증가했다. 이달 들어서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 기업들이 다이소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편의점의 뷰티 성장 잠재력은 더 크다. 최근 편의점 뷰티 제품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CU의 연도별 화장품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22년(24.0%), 2023년(28.3%)과 같이 나타났고, GS25에서도 기초화장품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이 2022년(35.5%)과 2023년(54.1%)으로 나타났다.


과거 편의점에선 립케어 제품이나 클렌징티슈 등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에는 마스크팩과 소용량 스킨케어 등의 기초화장품 판매 비중이 늘었다. CU가 올해 1월부터 9월22일까지의 화장품 카테고리별 전년 대비 매출 증감률을 살펴본 결과, 마스크팩(37.8%), 스킨·로션(24.7%), 클렌징(18.2%) 등 상품의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GS25에서도 올해 1월부터 8월 초까지의 화장품 카테고리별 매출 구성비가 기초화장품 69.5%, 색조화장품 30.5%로 나타났다.


편의점 화장품의 제품군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주요 소비자가 트렌드에 민감한 1020 젊은 세대여서다. 이들이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뷰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으로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CU의 화장품 연령별 매출 비중에서 10대가 42.3%, 20대가 32.3%로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의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GS25에서도 화장품 구매 고객의 절반가량이 1020 세대였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만보정담]"시각장애인에게 들려주는 영화…나도 몰래 눈시울 붉혀"
수정 2024.10.03 12:39입력 2024.10.03 12:39

영화 '소풍' 화면 해설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
노인들의 애환, 중후한 목소리로 전해
배리어프리 공연·전시↑…시작은 배우 수어교육
1년간 500곳 누비며 하루 1만보
현장의 목소리에서 '현답' 찾아

"평생 현장에 있었다. 모든 답은 거기에 있더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일할 때부터 줄곧 강조해왔다. 그만큼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다. '현장형' 장관이라 불릴 정도다. 실무진의 고충을 경청해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는 문제 앞에서 평형감각도 유지한다.


만보정담-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종로 CGV피카다리에서 열린 가치봄영화제에 참석, 영화 '소풍' 을 관람하고 출연배우, 초청 장애인 등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윤석열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건 지난해 10월. 만 1년 동안 현장을 방문한 횟수는 500회 이상이다. 하루 평균 일정을 세 개 이상 소화할 만큼 분주하게 움직인다. 수행비서들은 빡빡한 스케줄에 혀를 내두른다. "장관님 연세가 일흔셋인데, 저보다 체력이 훨씬 좋으신 것 같아요."

'현장형' 장관, 동력은 걷기

체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유 장관은 건강한 습관으로 유지한다. 밑바탕은 걷기다. 틈나는 대로 도보한다.


"일부러 걸음 수를 세면서 걷진 않지만 요즘에는 하루 1만 보 정도 움직이지 않나 싶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한두 정거장을 미리 내려서 걸어가고. 어느덧 도보가 운동이라기보다 생활이 됐다."

문체부 장관을 맡으면서 걸을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시도를 옮겨 다니며 현장을 찾을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말 일정마저 빡빡해 일정한 경로를 정하고 걷기가 어려워졌다. 유 장관은 "현장에서 틈새 시간을 활용해 걷는다"고 했다. "아무리 일정이 많아도 이동 중에 몇십 보라도 걸을 여유가 생기면 가급적 도보로 간다."


유인촌.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걷기를 챙기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생각할 일이 많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그는 "걷기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걷는 동안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솔직한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곤 한다. 새로운 풍경과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매일 다니는 출근길이라도 걸어서 가면 자동차나 대중교통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주한다. 잘못 접어든 길에서 뜻밖의 경관을 보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배우다

유 장관은 지난달 4일 가치봄 영화제가 열린 서울 종로구 CGV 피카디리 1958을 찾았다. 자신이 화면을 해설한 특별상영작 '소풍'을 관람했다. 가치봄 영화제는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 약 서른 편을 상영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장애인 영화제다. '가치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영화를 '같이 본다'는 의미를 담은 영화 한글 자막 화면해설 서비스의 명칭이다.


'소풍'은 노인들의 애환을 다룬다. 파킨슨병에 걸려 툭하면 손목을 떠는 고은심(나문희). 사돈이자 친구인 진금순(김영옥)은 매일같이 밭일한 탓에 허리 병을 달고 산다. 모두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길 소망한다. 안타깝고 애절한 이야기는 유 장관의 중후한 목소리를 통해 객석에 전달됐다.


만보정담-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종로 CGV피카다리에서 열린 가치봄영화제에 참석, 영화 '소풍' 을 관람하고 출연배우, 초청 장애인 등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금순과 은심이 나무 막대기로 바닥을 짚으며 노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길을 올라간다. 금순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꾸준히 걷는다. 두 사람이 난간이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다. 두 사람은 거의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비틀비틀 계단을 올라간다."


시각장애인 상당수는 눈물을 훔쳤다. 유 장관도 눈시울을 붉혔다. 한 달 전 작은 화면으로 보며 녹음까지 했는데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함께 자리한 출연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유 장관의 화면해설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문희는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화면해설로 느낄 수 있어 따뜻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박근형도 "영화를 해설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랐는데, 제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을 알게 해주더라"며 "영화의 느낌이 배로 전해지는 듯했다"고 밝혔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관객도 더러 있었다. 한 청각장애인은 "자막으로만 보니 감성 전달이 기대만큼 원활하지 않았다"며 "수어 통역 영상을 같이 첨부해주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시각장애인도 "화면해설 영화를 경험하는 영화관이 없다시피 하다"며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조언"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만보정담-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종로 CGV피카다리에서 열린 가치봄영화제에 참석, 영화 '소풍' 을 관람하고 출연배우, 초청 장애인 등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배우로서 무대에 섰을 때는 배리어프리 공연이나 영상의 필요성을 알지 못했다. 지난 4월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스카팽'을 무장애 공연으로 관람하면서 깨달았다. 수어 통역사가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라 그림자처럼 내용을 전달했는데, 수어와 표정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들고 누리는 문화 예술 현장이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알 권리' 보장은 물론 농인들의 자유로운 문화 향유와 창조를 위해 이런 환경을 넓혀보겠다."


수월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문화계에 배리어프리 전문인력이 부족한데다 추가되는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유 장관은 국립예술단체와 국립문화예술시설을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공연과 전시 문화를 퍼뜨릴 생각이다. 시작은 연극배우를 대상으로 한 수어 교육이다.


"수어 통역 연극의 경우 기존 대본을 수어로 번역하고 연습하고 실연까지 해야 하더라. 사실상 연극 전 과정에 버금가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무대와 연기에 익숙한 배우들이 기본적인 수어를 배운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배리어프리 정착에 수반되는 갖가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무대를 넘어 다른 문화 현장까지 활용도도 높아질 수 있다."


현장에서 찾는 즐거움

나문희는 이날 관객들에게 건강한 삶을 영위하라면서 웃으라고 권했다. "지난해 영감이 가고 저 혼자 산다. 해가 저물어갈 때면 '어서 데려가 줬으면'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또 멀쩡해져서 '어제 왜 그랬지' 싶더라. 고독을 달래려고 어린 시절 친구와 자주 교류한다. 오후 8시가 되면 전화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함께 가곡을 부른다. 그렇게 신나게 노래하고서 '우리 오늘도 웃자'며 통화를 마친다. 살아보니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더라."


만보정담-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종로 CGV피카다리에서 열린 가치봄영화제에 참석, 영화 '소풍' 을 관람하고 출연배우, 초청 장애인 등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유 장관은 당부대로 환하게 웃으며 영화관 밖까지 나문희를 배웅했다. 원래 웃음이 많은 편이다. 직책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지만,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문제가 벌어져도 진정성을 갖추고 일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진 않지만 진정성의 힘을 믿는다. 설사 오해가 생기더라도 언젠가 상대가 이해할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든 힘을 주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세상 이치가 그렇다. 뭔가를 새롭게 추진하거나 좋게 바꾸려고 하면 기존에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럴 때일수록 과연 옳은 게 무엇인지,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한다. 그렇게 나온 결론이 그대로라면 오해받거나 욕을 먹어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긴장과 불안을 완화하는 그만의 방법은 하나 더 있다. 자전거 운전이다. 바람을 가르며 씽씽 내달릴 때마다 갑갑하던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배우로 활동한 지난해 상반기에 집에서 공연장까지 편도 30㎞를 매일 자전거를 타고 오갈 만큼 좋아한다. 유럽에서 2000㎞를 자전거로 횡단한 적도 있다.


문체부 장관을 맡으면서 안장에 엉덩이를 얹을 기회는 크게 줄었다. 지역 방문 때 직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정도다. 엄밀히 따지면 이 또한 업무다. 자전거 관광 코스와 안내 체계를 점검하며 관련 사업을 구체화한다. 전적지 자전거 순례길이 대표적 예다. 한반도 구석구석에 있는 의미 깊은 격전지와 기념시설을 이야기로 묶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


14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가 서울 종로구의 장관 후보 사무실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유 장관은 최근에도 자전거를 타고 서귀포 성산읍에 있는 '호국영웅 강승우로'와 '6·25 참전 기념비'를 비롯해 가평 안보 전적지, 양평 전적지 등을 찾았다. 그는 "한국전쟁 때 참전국들의 참전비와 국군이 전투에서 공을 세준 전적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순례길 코스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들이 전국을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껏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자전거길을 잘 만들어놓은 곳이 없더라.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기에 충분한 인프라다. 훌륭한 자원인 만큼 자전거 여행이 주는 매력과 지역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페달을 열심히 밟겠다."


걷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장관 때문에 문체부 전체는 '현장형'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산업과 학계, 행정기관 관계자들을 부지런히 만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유 장관의 특별 주문이 있었다. "현장주의자로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얘기를 들었다. 현장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예술 현장의 목소리는 책상에서 정책을 짤 때와 엄청 다르다. 세종시에 있는 여러분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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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대로 뽑아도, 휴학 처리해도…의대 수업 정상화 요원"
수정 2024.10.03 08:30입력 2024.10.03 08:30

서울대發 의대 집단휴학, 타 대학 확산 가능성↑
학생들 복귀 '골든타임' 지나…내년 대책 서둘러야
3일 용산서 의평원 압박 반대 결의대회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학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전격 처리하면서 다른 의대로도 휴학 승인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교육부가 곧바로 서울대에 대한 고강도 감사에 착수하는 등 강력 대응을 예고했지만, 전체 의대 가운데 대학 총장이 아닌 의대 학장이 휴학을 승인할 수 있는 곳이 절반가량인 만큼 적지 않은 의대가 연달아 휴학을 처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에선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미 7개월 이상 이어져 올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워진 만큼, 현실적으로 내년 2024학년도 입학생과 2025학년도 신입생 76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게 되는 상황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휴학 승인은 정상적 절차…정부와 충돌 아냐"

3일 의료계와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가 지난달 30일 의대생 700여명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한 것은 지금 당장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이 돌아오더라도 내년 2월까지 남은 4~5개월 만에 일 년치 과정을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서울 의대는 휴학 승인을 더 이상 늦추면 학생들이 전원 유급되기 때문에 주임교수회의에서 휴학 승인을 의결했다"며 "정부 방침에 충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대학 자율성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에 따라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역시 이미 지난 5월 교수회의에서 정상적인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휴학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교육부의 의대생 휴학 및 유급 불가 방침에 막혀 최종 결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사립 의대 관계자는 "서울대가 첫 사례가 된 만큼 의대 학장이 휴학 승인 권한을 위임받은 다른 대학도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다만 대학 총장이 승인해야 하는 대학의 경우 아무래도 교육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서울대 감사 결과와 다른 대학들의 동향을 지켜보며 (휴학 승인)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올해 2월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하자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동맹 휴학계를 제출했고, 교육부는 집단 휴학을 허가할 수 없다며 1학기 성적 마감 기한을 학년 말로 바꾸는 등 수업 복귀를 유도해 왔다. 하지만 서울대를 포함한 40개 의대들이 모두 정상적인 수업을 하지 못한 만큼 이제는 학생들의 집단 유급이나 등록금 거부에 따른 제적 처리 등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의대 휴학 승인' 취소할 수 있을까?

교육부는 여전히 동맹 휴학은 안 되며, 지난 7월 마련한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생들이 복귀만 한다면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날엔 40개 의대에 '학사 운영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 집단휴학 확산도 단속하고 나섰다. 공문에선 "집단행동의 하나로 이뤄지는 '동맹휴학'은 휴학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향후 대규모 휴학 허가 등이 이뤄지는 경우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 및 과정, 향후 복귀 상황을 고려한 교육과정 운영 준비 사항 등에 대해 점검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학교가 학사 등과 관련해 법령을 위반하거나 학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총장에게 시정·변경을 명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위반 행위를 취소·정지하거나 학생모집 정지, 정원 감축까지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대 의대와 같은 사례에 대해 교육부가 직접 휴학 취소 명령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학가의 판단이다. 휴학과 관련한 최종 권한은 기본적으로 각 대학 총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도 공동 입장문을 통해 "서울대 의대의 결정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정상적인 학습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하기 위해 내린 정의롭고 정당한 결정"이라며 "정부가 학생들의 자유 의사에 의한 휴학을 승인하지 않고 교육받지 않은 학생을 진급시키려는 것이야말로 대학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이어 "오히려 교과과정 이수가 안 된 상태에서 의대생들을 진급시키는 대학을 감사하고 징계하는 게 상식인데, 상식을 따른 의대에 현지 감사 등 엄정 대처한다는 것은 반교육적 행태"라며 "다른 39개 의과대학의 학장, 총장도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휴학 신청을 승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의대 신입생 2.5배…의평원 무력화 시도도

일각에선 이번 의대생 집단 휴학이 확산할 경우 1990년대 한의대 집단 유급 사태 때처럼 이듬해 입학 정원이 감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대학들은 유급이 아닌 휴학인 만큼 각 의대에 배정된 내년 신입생 선발 규모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2025학년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따라 이미 대학별 증원 규모가 확정됐고 수시모집 등 입시 일정도 시작된 만큼 다른 변화가 있을 경우 수험생들의 크게 혼란을 겪을 것이란 설명이다.


과거 1993년 정부가 약국에서도 한약을 조제·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반발해 전국 한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3000여명이 집단 유급하자 교육부는 9개 한의대의 1994학년도 입학정원을 30% 감축한 바 있다. 정해진 인원을 그대로 모집할 경우 정상 수업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1996년에도 약사들에게 한약 조제사 면허를 주는 데 반발하며 한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1000명 이상 유급됐는데, 교육부는 1997학년도 대입에서 대학별로 20~30%씩 모집정원을 줄였다.


정부는 의대를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도 압박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의대 증원과 관련, 의평원의 주요변화 평가 계획을 교육부가 심의한 이후 수정·보완을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달 말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엔 의평원이 의대 불인증 판정의 1년 유예를 의무화하고, 의평원에 대한 교육부 지정 취소 시 기존 의대의 인증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평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연다. 교수들은 "의학 교육의 파행을 가져오게 될 교육부 조치에 교수들이 침묵하고 눈을 감는다면 학생 교육 포기를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우리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에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교육 시스템 공백, 회복까지 오래 걸릴 것"

정부는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 마지 노선을 기존 9월에서 다시 11월로 미룬 상황이다. 의대 학부 수업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하고 보강과 야간수업 등까지 하면 15~20주 안에 두 학기(30주)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일 기준으로 전국 의대 40곳의 재적인원 1만9374명 중 2학기 등록을 마친 학생은 653명(3.4%)에 불과했다. 현실적으로 휴학이나 유급을 피할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은 셈이다.


이에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할 경우 당장 내년에 신규 의사 3000여명을 배출하지 못하고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및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수급도 차질을 빚게 된다. 또 의대 예과 1학년 학생들은 올해 입학생(3058명)과 내년 신입생(4567명)을 합쳐 7600여명이 한꺼번에, 최소 6년간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내년 의대 수업이 재개돼 2024학번 학생들이 복귀하더라도 이번엔 2025학번 학생들이 집단 휴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의대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기존보다 학생 수가 2~3배 많아지는데 대학은 시설 확충이나 교수 충원 등 실질적인 수업 준비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제대로 된 수업이나 실습을 받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의사를 양산해 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과도한 당직과 수술, 외래진료 등에 내몰린 의대 교수들도 피로가 한계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지금 이대로는 증원된 규모만큼 신입생을 뽑아도, 의대 재학생들을 단체로 휴학 처리해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다"며 "생명을 다루기에 더 고강도로, 정교하게 운영돼야 할 의사 교육 시스템에 한 해 공백이 생긴 만큼 그 후유증은 더 크고 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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