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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순방 후 첫 민생행보…"시민의 목소리 경청할 것"

수정 2023.11.01 12:42입력 2023.11.01 12:17

마포구 카페에서 시민 60여명 만나
민생 타운홀 방식으로 민생 의견 청취
긴축재정·재배치 필요성도 강조
尹 "재정 늘리면 서민이 죽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여야로 대치된 정치과잉 상황에서도 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윤 대통령은 "모든 게 제 책임"이라며 거듭 민생 현장을 찾아 직접 민심을 살피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카페에서 주재한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살펴야 되고,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달래줘야 한다" 이같이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국민 6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를 마포구에서 진행한 이유도 2021년 6월 정치참여를 선언하게 된 계기가 된 곳인 만큼 민생이라는 초심을 되새기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윤 대통령은 정치참여 선언 당시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씨, K-9 자주포 사고 생존자 이찬호씨와 함께 마포의 자영업자를 언급한 후 "도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거냐고, 국가는 왜 희생만을 요구하는 거냐고 (저에게) 물었다"며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당시 코로나19로 힘들어하던 마포 자영업자의 절규를 듣고 민생을 살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마포에서 초심을 다시 새기고 비상한 각오로 민생을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의힘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대통령실 참모진들에게 민생현장을 찾아 국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라고 거듭 주문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우리가 다 아는 얘기라도 현장에서 직접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더 생생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심각성도 피부에 와닿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국무위원들에게 현장행보를 주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정부의 긴축재정 및 약자복지 기조에 반대하는 세력을 향한 불만도 표했다. 윤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무턱대고 재정을 풀지 못해 서민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에 재배치하고 있다며 "(재정 지원을) 받아오다가 못 받는 쪽은 그야말로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한다. 요새 같은 정치 과잉 시대에 이런 것(긴축 재정)을 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가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또 서민들이 죽는다"며 긴축재정과 재정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본인들이 체감하고 있는 민생의 고충과 정부에 바라는 건의 사항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회의에서 거론된 제기된 민생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속도감 있게 마련해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에서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국회에서는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대통령실에서는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등이 참석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단독]'성형외과와 싸우는 법' 유튜버 손영서 변호사 '수술실 녹음' 올렸다 실형
수정 2023.11.01 15:47입력 2023.11.01 14:13

"성형외과를 상대로 싸우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현직 변호사가 의뢰인이 불법적으로 녹음한 수술실 녹음파일을 유튜브에 게시해 공개했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해당 변호사는 공익 목적을 위한 정당행위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 만장일치 의견으로 유죄 평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자신이 수임한 사건들과 관련해 의뢰인이 합의금을 지급받도록 병원 측을 압박하거나, 변호사인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손영서 변호사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동영상 캡처.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30형사부(부장판사 강두례)는 지난달 26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영서 변호사(39·변호사시험 4회)에게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손 변호사의 의뢰인 김모씨(41)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손 변호사는 김씨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집도의와 간호사 등이 수술 도중 나눈 대화를 몰래 녹음한 파일을 전달받은 뒤 일부 내용을 발췌해 지난해 4월 1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손 변호사는 전달받은 녹음파일을 3개로 나눈 뒤 김씨가 수술받은 성형외과 홈페이지 일부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음성녹음 증거 포함] 충격적인 #성형외과 #대리수술 #유령수술 수술실 현장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제작해 게시했다.


이외에도 손 변호사는 같은 날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로 마치 대리수술 피해자 김씨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네이버카페 '뷰티여우야', '가슴아픈사람들', '파우더룸', 성형어플 '바비록' 등에 위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는 인터넷호스트 주소(URL)가 포함된 글을 '[수술실에 녹음기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강남 성형외과 대리수술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게시글에는 성형외과 이름을 암시하는 초성 등을 함께 적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는 7명의 배심원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양형에 대해서는 2명의 배심원이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3년', 4명의 배심원이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2년' 등 6명이 실형 의견을 냈다. 나머지 1명의 배심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및 자격정지 3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의뢰인으로부터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입수한 후 피해자들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채 위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범행의 경위 및 내용, 사생활 및 통신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 등에 비춰 그 죄질과 범정이 불량하다"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률전문가임에도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사건 범행을 감행해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이를 자신의 영업 홍보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범행 이후에도 위 대화 내용이 공개된 유튜브 영상 URL이 기재된 피켓과 함께 피해자가 운영하는 성형외과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바, 위와 같이 1인 시위까지 했어야 할 만한 상당한 정황을 찾아 볼 수 없는 등 범행 이후의 정황까지 고려하면 비난가능성은 더욱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로 인한 피해자들의 재산적·정신적 피해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 회복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했다"라며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수차례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다시 돌아가도 같은 행위를 하겠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정 등에 비춰 보면 재범의 위험성도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2021년 6월 코 재수술을 받으면서 수술 상황을 몰래 녹음했다. 수술 후 녹음 내용을 확인하다가 원래 수술을 하기로 했던 집도의 외에 다른 봉직의가 수술에 참여한 사실을 알게 돼 대리수술을 의심하며 고소했지만 불송치 결정이 되자 손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재판에서 김씨는 해당 대화 내용이 성형부작용이나 대리수술 등을 대비한 자구책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손 변호사 역시 녹음파일을 듣고 대리수술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 법정에서 이 사건 녹음파일을 재생해본 결과 이 사건 녹음파일에 녹음된 내용만으로는 피해자들이 대리수술을 했다는 사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 공개행위는 자신이 수임한 사건들과 관련해 상대방인 피해자들이 피고인 김씨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도록 압박하거나 변호사인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피고인이 게시한 동영상을 보고 이 사건 병원으로부터 수술부작용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환자들 상당수가 상담 또는 사건위임을 위해 피고인을 찾은 것으로 보이고, 최근 피고인이 사건을 수임해 이 사건 병원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정당행위 주장을 배척했다.


이번 사건에서 고소인 측을 대리한 박진식 법무법인 비트윈 변호사는 "손 변호사는 성형외과의 사내 변호사로 짧게 근무한 경력을 내세워 유튜브를 통해 성형외과 수술 피해자를 변호한다고 광고·선전을 하고 있는데 그 수법이 지나치게 저열하고 조잡하다"라며 "진단서를 발급받으러 갈 때 반드시 경찰을 부르라고 조언하고, 댓글, 게시글로 괴롭혀서 병원의 영업에 지장을 주라고 한다. 그래도 합의금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시위까지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에서도 영상을 올리고 시위를 한 것은 합의금을 주도록 압박하거나,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자신의 형사사건 고소를 취하하게 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2021년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우수 변호사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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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수정 2023.11.14 20:39입력 2023.11.01 12:00

ODA실태분석[K원조 추적기]⑩
데이터 분석으로 문제점 정리
실패 사례 르포로 베트남行 결정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ban rao con)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를 살피는 구채은, 전진영 기자.
선진국의 꿈은 이뤄졌는가

공적개발원조(ODA)는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단어다. 하지만 '원조'라는 단어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브 미 초콜릿 그런 것 말하는 거야?" "장충동 체육관 거기도 필리핀이 지어줬잖아."


'원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그런 것이다. 전쟁의 아픔으로 모두가 굶주리던 시절 미국에게 초콜릿이나 밀가루 등을 배급받던 이야기들. 지금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사실 대한민국은 ODA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나라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으로 올해보다 45%나 증가한 6조5000억원을 편성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라며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내걸었다.


"잘될까?"

역대 최대 예산은 취재 본능을 자극했다. 특히 예산은 국민 세금으로 쓰이는 만큼, 낭비 없이 필요한 곳에 잘 사용되고 있는지 낱낱이 따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ODA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사전 취재를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관리 소홀, 비리 등 여러 문제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코로나19로 현지에 관리자들이 방문할 수 없게 되면서 방치된 사업들은 부쩍 늘었다.


그러던 중 새만금 잼버리 논란이 일었다. 선진국이라는 위상에 도취됐지만, 시행이 부실해 결국 국제적 위상만 깎아내린 사업이었다.


바로 이런 '선진국 환상에서 벗어나기'에 주목했다. 진정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대외적인 사업은 우리 정부가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수원국(원조를 받는 나라) 입장에서도 이 사업은 절실할지 모른다. 보이지 않으니, 확인하기 어려우니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먼저 정부의 10년 치 ODA 사업이 담긴 485만개 데이터를 다운받아 엑셀로 정리했다. 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했다. 'K원조 추적기'가 첫발을 뗀 순간이었다.


데이터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DA 관련자들에게 취재한 문제점을 단서 삼아 485만개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ODA를 시행하는 부처들이 어디가 있는지 따로 모아 살펴보기도 하고, 일정 금액이 넘는 대형 사업을 위주로 살펴보기도 했다. 가장 많이 원조하는 나라 베트남부터 시작해 수원국을 줄 세워보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외교부 출입 기자는 ODA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국제부 출입 기자는 일본, 스웨덴 등에 조언을 구하고 해외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세종에서 기획재정부 등을 출입하는 기자는 예산과 관련한 취재를 맡기로 했다. 모든 정보를 구글 문서에 정리했고, 문서가 몇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취재가 이뤄지면서 우리는 한국 ODA의 공통된 문제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 ▲사후 관리에 실패한 경우 등이었다.



감사원 모니터링 보고서에는 ODA 실패 사례가 기록돼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이나 시행 기관은 'A국', 'B국', 'C 기관' 등 익명으로 표기돼있었다. 실패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곳, 익명으로 남겨진 국가의 이름이 중복되는 곳일수록 원조를 많이 하는 국가일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가장 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번역기로 베트남어로 한국을 뜻하는 'Han quoc(한꾸옥)', 'ODA' 등 다양한 단어를 조합해 찾아내기를 수백 번. ODA 엑셀 데이터, 감사원 모니터링 보고서, 그리고 베트남 언론 세 곳에 모두 등장한 지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착공식 날 보도 자료가 대대적으로 나갔고, 이후 몇 년이 지난 뒤 베트남 현지에서는 한국의 태양광 ODA 사업의 실패로 인민위원회 감사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연속 보도된 것을 발견했다.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 할머니가 집 뒤뜰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베트남 언론과의 방송 인터뷰에서 두건을 둘러쓴 할머니는 "일 년 반 만에 모든 전기가 나갔다"며 두 팔을 벌려가며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 기사에 등장하는 호티담(Ho Thi Dam)씨다.


할머니의 호소는 강렬했다.


"여기다."


ODA 실패 사례 르포, 베트남 꽝빈성 태양광 발전사업 현장은 그렇게 선정됐다.


한인회, 한인 언론에 "혹시 꽝빈성의 태양광 ODA 실패 사례를 알고 있다면 연락해 달라"는 제보 메일을 보냈다. 한인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등장해 메시지를 뿌리곤 했다. 몇 군데서 연락이 왔으나 답변이 와도 결정적인 내용이 없어 실망하기도 했다. 여러 취재를 조합한 뒤 "현장을 가봐야겠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베트남 현지 언론과 한인회에 보낸 취재진이 보낸 메일들.
베트남에서의 일주일

반 라오 콘(ban rao con)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동허이 공항으로 가야 했다. 하노이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갈아타 도착해야 하는, 편도 11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산악지대로 국가 전력망 설치가 어려워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려고 함."


ODA 사업 취지대로, 마을은 동허이 시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산을 올라야 나오는 곳이었다. 유일한 도로는 일 차선 비포장도로, 바로 옆은 밀림이 우거진 낭떠러지였다. 심지어 주민들이 풀어 키우는 소 떼는 종종 이 도로를 가로막았다. 우기였기 때문에 도로에는 흙탕물이 고였고, 바퀴가 빠져 헛도는 일이 많았다. "차로 가기 어려워서 여기 취재하는 베트남 기자들은 오토바이를 잘 타는 분들이 온대요." 통역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핸드폰은 마을 도착 1시간 전부터 수신 불가 상태가 됐다. 차 천장에 달린 핸들을 잡은 손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고, 눈이 질끈 감겼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빈 라오콘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수업 시작 전에 팔씨름을 하며 놀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반 라오 콘 주민들은 그 노력에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베트남 통역원의 말에도 주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흘간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마을에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고장 난 태양광 패널 10개를 잡초를 헤치며 찾아 확인하고, 이것저것 질문한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취재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됐고, 숙소에 돌아와도 마을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친밀감이 쌓이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담기 위해선 디테일 취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씨의 집은 매일 드나들었는데, 친해진 뒤에는 사진부터 그림 그리던 일기장, 스케치북을 전부 꺼내 보고 이를 기록했다. 우리가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기사에 모두 표기할 수 있었던, 그리고 호티담씨의 60여년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끈끈하게 기사에 녹여낼 수 있던 이유다.


취재진은 반 라오 콘 마을의 학교와 유치원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태양광 설치 위치를 표시해달라고 했고, 표시된 부분을 중심으로 동선을 그려가며 손상된 태양광 패널 갯수와 축전지 관리 여부 등을 체크했다.
추적

반 라오콘 마을 출퇴근 도장을 찍으면서도, 우리는 통역사와 함께 해당 ODA 사업과 관련한 베트남 정부 문서를 찾아 모았다. 문서에는 태양광 사업 시공사 KT와 계약한 하청업체 두 곳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업체 주소를 구글로 검색해 일단 사무실을 찾아갔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에서였다. 한 곳은 도산해 회사 자체가 없어진 상태였고, 다른 한 곳은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KT 정산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단 호소했다.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나오던 그는 구체적인 정황을 묻는 여러 질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뒤뜰에 쌓인 기자재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3화에 등장한 '한국 때문에 이혼했다'는 회사 관계자의 취재는 이렇게 성사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삼각 확인이 필요했다. KT와 재원을 지급한 한국수출입은행(EDCF)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공문을 보내고 취재에 나섰다. 정보 청구를 도와줄 곳을 찾기 위해 의원회관을 돌며 의원실을 물색했다. 반 라오 콘 마을 르포 기사와 함께 보도한 기사들은 485만개의 데이터 분석 위에 정보공개 청구 49회, 의원실 7곳과 협력해 얻은 자료들을 얹어 썼다.


후일담

'K 원조 추적기', 그리고 꽝빈성 태양광 발전 사업 실패 현장을 담은 내러티브 시리즈 '태양광과 장작'은 10월 24일부터 보도되기 시작했다. 내러티브 페이지는 30일 자로 공개됐다. "사람들이 웃고 있는 표정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예산 낭비 아닌가. 저 주민들에게 제대로 쓰여야 한다"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보도가 나간 뒤 국회의원과 부처 관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정감사 기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협의의사록 없이 체결하는 한국 ODA에 대한 문제점 기사를 인용해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질의하기도 했다. 방 장관은 "예산 관리에 보다 철저하게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반응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며 ODA 관련 질의를 소위에서 준비하고 싶으니, 취재진과 만나 설명을 듣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ODA 예산이 앞으로 알맞은 곳에 올바로 쓰일 수 있게 우리는 그동안 취재한 것들을 최대한 전할 것이다.


다만 아직 반 라오 콘 마을에 다시 찾아가겠다거나, 이를 수리해주겠다는 시행 기관의 공식 입장은 받지 못한 상태다.


우리가 호티담씨에게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을 기사로 한국에 전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어로 우리나라를 부르는 이름 한꾸옥. 그는 언젠가 한꾸옥에서 고장 난 패널을 고쳐줄 사람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 것이 아니라 한꾸옥에서 준 것'이라며 그가 지켜온 전지함의 배터리를 보며 분명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저 빛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ODA 사업 관련자들이 응답하길, 간절히 바란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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