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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6년간 집에만 있었는데"…고립·은둔 청년들의 회복기

수정 2023.10.28 22:15입력 2023.10.28 08:00

서울 청년 고립·은둔 ‘최대 13만명’
심리 상담, 일상 회복 지원
올해 1078명 지원해 502명 선정

“6년 동안 집 안에만 있었고, 연락하는 친구들도 없었어요. 오로지 가족들하고만 소통했어요. 사람을 안 만나다 보니 말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5000걸음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 광진구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청년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만난 김모씨(27)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며 좋지 않은 생각도 했던 그는 용기를 내 한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소개받은 사회복지사를 통해 청년이음센터를 알게 됐다. 김씨는 “사실 처음 참여할 때는 무척 두려웠다. 그래도 제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고 용기를 내서 신청하게 됐다”며 “이곳에서 전문기관을 통해 검사받고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 근력운동 등을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청년이음센터는 서울시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 및 맞춤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13명의 청년은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순간 ‘장소를 잘못 찾아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은 점심 메뉴를 정하고, 대형마트에 함께 가서 장을 봐왔다. 오늘의 식사는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였다. “닭가슴살은 ○○○님이 후원해주셨습니다”라고 하자 박수와 호응이 쏟아졌다.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너나 할 것 없이 뒷정리를 같이했다. 한 청년은 노래하고, 다른 청년은 편하게 누워 휴식을 취했다. 자유로우면서도 활기찬 분위기였다. 청년이음센터 관계자는 “낮은 고립 상태의 청년들은 자기애, 관계 형성 등 일상 회복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음식 만들기, 식물 키우기, 체조, 운동, 미술치료 등 다양한 활동이 준비돼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춤이었다. 8명의 청년이 5분 거리에 있는 춤 연습실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율적으로 진행됐다. 이번엔 가수 다이나믹듀오·이영지의 노래 'Smoke' 안무를 배웠다. ‘나는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에 하나야 브레이크 없는 바이크’라는 가사에 맞춰 신명 나는 춤동작이 이어졌다. 강사는 “왼쪽, 중간, 왼쪽. 괜찮아요. 찌르고 빠르게. 다시 왼쪽, 오른쪽, 왼쪽. 주먹, 엄지, 뽀뽀, 고개.” 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청년들은 “오늘의 리더는 △△△님이다”, “동작을 이어서 하니까 어렵네” 등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한 청년은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 뚝섬유원지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청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오후 5시 두 번째 프로그램은 스케이트보드였다. 뚝섬유원지로 6명이 이동했고, 그 앞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대여했다. 별도의 강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평소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한 청년이 일일 강사가 돼 나머지 청년들에게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재능 기부이자 자신감을 되찾는 과정의 일환이다. 스케이트보드 강사가 된 청년은 “자, 신발 끈부터 단단히 묶으시고 가급적 같이 해봐요”라며 초보자들의 세심하게 자세를 살폈다. 참여자 중에 “너무 무서운데”라는 말이 나오자 “상체를 숙이세요, 조심조심. 살살 밀고 좋아요”라며 서로를 도왔다. 이들은 한강의 노을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즐겁게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한국생명의전화, 사회복지관 등에 상담 및 도움을 요청했다가 청년이음센터를 추천받은 경우가 많았다. 올해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 지원자는 1078명으로, 이 중 502명이 선정됐다. 19~39세 고립·은둔청년이 대상으로 청년몽땅정보통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았다. 고립청년은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 유지된 경우이며, 지인과의 교류가 1년에 1~2번 이하 또는 전혀 없는 경우다. 은둔청년은 외출이 거의 없고 본인의 방과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1주일간 경제활동 및 1개월간 구직활동·학업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해당한다. 김모씨(37)는 “원래 장사를 했었는데 건강상 문제와 겹쳐 폐업해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솔직히 청년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아서 지원이 망설여졌다”며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자연스럽게 유대 관계도 형성됐다. 앞으로도 저같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만 13∼39세 고립·은둔 청년은 최대 13만명, 서울 청년 중 4.5%로 추정됐다. 대부분 '실직 또는 취업에 어려움'(45.5%), '심리적·정신적 어려움'(40.9%),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움'(40.3%) 등으로 고립·은둔 상태에 빠졌다. 성인기 이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경험'(62.1%),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경험'(57.8%),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57.2%)이 있었다. 성인기 이후에는 대다수가 취업 실패를 경험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립·은둔 청년이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선균 간이시약 검사 '음성'…"채취한 모발·소변 국과수에 의뢰"
수정 2023.10.30 16:06입력 2023.10.28 19:08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마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48)가 간이 시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28일 오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이씨를 불러 1시간 10분가량 조사했으며, 간이 시약 검사를 한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5일 법원으로부터 이씨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날 간이 시약 검사를 했다. 간이 검사는 통상 5~10일 안에 마약을 했을 경우 반응이 나온다. 경찰은 간이 검사의 경우 정확도가 떨어지는 점을 고려해 이씨의 모발과 소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1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마약 투약 여부와 종류·횟수 등을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와 차량도 압수했다.

이날 이씨는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채 1시간여 만에 조사를 끝내고 귀가했다. 그는 경찰서를 나오면서 취재진과 만나 "오늘은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했고, 다음 정식 조사 때 필요한 요청 사항들에 대해 응했다"며 "조만간 (경찰이) 다시 부른다고 하니 성실히 답하겠다"고 말했다.


마약 혐의를 받는 이선균씨(48)가 28일 오후 인천 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사무실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혜숙기자/hsp0664@

앞서 이씨는 이날 경찰의 소환 조사에 응해 인천 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사무실로 출석했다. 이씨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많은 분께 큰 실망감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진실한 자세로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순간 너무 힘든 고통 감내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다시 한번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정장 차림을 하고 검은색 승합차에서 내린 이씨는 사죄의 뜻을 밝히며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올해 초부터 유흥업소 실장 A(29·여)씨의 서울 자택에서 대마초 등 여러 종류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경찰은 서울 강남의 '멤버십(회원제) 룸살롱'에서 마약이 유통된다는 첩보를 확인하던 중 이씨의 혐의를 포착했다.


한편 인천경찰청이 마약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린 인물은 이씨와 가수 지드래곤(35·본명 권지용)을 포함해 모두 10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강수사 후 지드래곤을 소환할지 검토하겠다"며 "현재 내사자 가운데 입건된 인물은 없다"고 밝혔다.




박혜숙 기자 hsp0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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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유기견]①유기견 '0914-309'의 마지막 27일…기다림 끝에 안락사되다
수정 2023.10.28 22:25입력 2023.10.28 09:00

포천에서 발견된 유기견
보호소 입소부터 안락사 이르기까지

지난 11일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의 한 건물 앞 작은 마당에 개 10마리가 뛰고 있다. 갈색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지만 개들에겐 상관없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개들은 서로 냄새도 맡고 장난으로 물기도 하면서 놀고 있다. 활발하게 뛰면서 초록색 기둥마다 오줌을 누며 영역을 표시했다. 사람 좋아하고 사회성도 좋은 귀여운 개들이다. 흰색 개 한 마리는 눈에 띄게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이 개의 이름은 '0914-309', 숫자다. 0914-309뿐만 아니라 뛰어놀고 있는 10마리 모두 이름이 죄수 번호처럼 숫자다. 이들은 이날 안락사된다.


지난 5일 0914-309는 3주 동안 작은 철장에 갇혀서인지 사람을 볼 때마다 예민하게 짖었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9월15일, 인식표 없이 온 0914-309

0914-309는 지난달 14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발견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왔다. 파란색 목줄을 한 것으로 보아 단순한 들개가 아닌 주인이 있던 반려견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수도권 지자체로부터 위탁받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로 개 400마리 정도 보호하고 있다.


0914-309는 바로 견사에 배치되지 않고 일명 '신입방'에 하루 정도 머물렀다. 혹시 전염병을 가졌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하룻밤을 신입방에서 보내고 0914-309는 수의사 앞에 놓였다. 다리를 떨고 있는 0914-309를 능숙하게 들어 올린 수의사는 건강 상태와 나이, 품종 등을 살펴본 후 인식표가 있는지 확인하는 기계를 갖다 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등록된 반려견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가 시행됐다. 지난 8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가 발표한 '2022년 반려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등록제가 실시되고 9년 동안 누적 등록된 반려견은 총 302만5859마리다. 다만 등록 건수는 줄고 있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반려견은 29만958마리로 전년 대비 41.8% 감소했다.

수의사의 검사를 받고 있는 0914-309. 인식표가 없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내장형 인식표만 있어도 주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임성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소장은 "인식표에 견주의 정보가 있어 인식표를 가진 개의 대부분은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며 "그러려면 분실 위험이 없는 내장형 인식표를 삽입해야 한다. 외장형 인식표를 목줄에 달고 오는 개는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견주들은 감염 등 부작용을 우려해 내장형보다는 외장형을 선호한다. 동물등록 방식 가운데 내장형 인식표 비율은 2021년과 2022년 모두 46%로 절반을 밑돌았다.


수의사가 0914-309의 신상을 모두 살펴보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직원들은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0914-309의 나이는 5살, 믹스견이고 암컷이다. 0914는 날짜, 3은 포천 등 지역명, 9는 순서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0914-309는 A13 견사에 배치됐다. 이제 주인이 찾거나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오기 전까지 철장에 있어야 한다. 0914-309 혼자 온 건 아니다. 같은 A13 견사에 0914-314도 들어왔다. 역시 흰색 믹스견이다. 0914-309, 0914-314와 마찬가지로 이날 유기 상태로 발견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들어온 개는 총 33마리다. 이들 중 인식표를 가진 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올라온 0914-309의 유기 공고. /캡처=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9월23일, 일주일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주인
털이 뻗친 0914-309가 오른쪽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이날 0914-309는 안락사된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멍멍!" 일주일 뒤 찾은 견사 속 0914-309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차게 짖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유기 안내 공고에 "겁 많음, 방어적 입질"이 적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짖는 건 아니다. 매일 밥을 주는 직원 최모씨(72·남)에겐 짖지 않는다. 최씨도 0914-309의 입질을 걱정하지 않고 사료를 부어준다. 최씨는 "매일 밥 주고, 깨끗하게 견사 신경 써주는 것을 개들이 알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양주시 구석에 위치해 있지만 주말만 되면 주중 대비 4배가 넘는 사람들이 방문한다.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으러 오기 때문이다. 0914-309의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반려견의 소유권은 유기견보호센터가 개를 보호한 지 10일이 지나면 견주에서 지자체로 넘어가게 된다. 소유권이 넘어가면 입양 공고를 내든, 안락사를 시행하든 유기견보호센터의 결정사항이다. 누군지 모를 0914-309 견주의 소유권은 9월24일까지로, 0914-309 입장에선 주인을 맞을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다.


오후 1시, 세 명이 동시에 들어왔다. 한 명은 유기견 1마리를 입양하러 왔고 2명은 부자지간으로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왔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개 1마리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관계자 손에 들려 나왔다. 0914-309가 아닌 갈색 푸들이었다. 그동안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구조된 개 33마리 가운데 9마리는 주인이 찾아갔다. 0914-309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5일, 발표되는 안락사 명단

9월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긴 추석 연휴가 지나는 동안 0914-309의 소유권은 지자체로 넘어가 입양이 가능한 반려견이 됐다. 하지만 0914-309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이가 많을수록, 크기가 클수록, 품종견이 아닐수록 입양될 확률은 떨어진다. 0914-309는 소형견이지만 많은 나이와 믹스견이라는 점이 입양 가능성을 떨어트렸다.


이달 5일 다시 찾은 한국동물구조협회 직원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안락사를 하는 날이다. 한국동물구조협회는 매주 2회 안락사를 진행한다. 직원들은 전날 뽑아둔 명단을 확인했다. 한 달 전후로 견사에 머무른 개 42마리가 명단에 담겼다. 0914-309도 견사에 머문 지 20일이 됐기에 안락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긴장되는 순간, 명단엔 0914-309가 없다. 연휴 동안 안락사를 진행하지 않아 한 달 가까이 안락사가 밀린 개도 있어서다. 0914-309에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생겼다.


한국동물구조협회 한 켠엔 안락사된 동물들을 위로하는 초가 켜져있었다. 초 위에는 "새 삶을 찾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버린 주인과 같은 인간임을 부끄러워 하지만, 그들의 안식을 위해 그래도 우리는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고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안락사를 시행하는 날이라고 한국동물구조협회 사무실의 분위기가 특별히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 힘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직원들은 항상 죄책감에 짓눌려있었다. 임 소장은 관련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안락사를 돕기는커녕 안락사를 시행하는 장면을 본 적도 없다. 일부러 '안락사 방'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 정도다. 직원 최씨는 "공간은 한정돼 있고 유기견은 계속 생겨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측은한 마음이 가장 크다"며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향한 미운 감정도 커진다"고 말했다.


안락사는 곧바로 시행되지 않는다. 개들은 '안락사 방'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2시간 정도 뛰어놀다가 안락사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동물구조협회 직원들은 목줄이 끊어진 개들을 찾아 색깔 있는 띠를 매준다. 혹시 명단을 잘못 보고 엉뚱한 생명을 앗아갈까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날 개 42마리는 2시간 동안 뛰어논 후 죽음을 맞이했다.


개 10마리가 안락사 전, 작은 마당에서 마지막 2시간을 뛰어놀고 있다. 0914-309는 마당 한 가운데 서서 허공을 봤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10월11일, 0914-309의 마지막 날

이달 11일, 다시 안락사를 시행하는 날이 찾아왔다. 0914-309는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입양을 문의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 안락사 명단엔 20마리가 담겼다. 이번엔 피할 수 없었다. '0914-309',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


함께 들어온 0914-314는 명단에서 빠졌다. 마포서울동물복지센터에서 0914-314를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포서울동물복지센터를 비롯한 서울시 내 유기견입양센터는 안락사를 앞둔 개를 데려가서 입양될 때까지 돌본다. 다만 공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기에 모두 데려갈 수는 없다. 0914-314는 운 좋게 선택돼 안락사를 피한 것이다.


오전 11시, 0914-309는 안락사 방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A13 견사에 배치되고 27일 만에 바깥에서 맘껏 뛰어놀았다. 개들은 뛰다가도 사람이 지나갈 때 멈춰 섰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두 시간이 지난 오후 1시, 안락사가 시작됐다. 0914-309가 첫 차례였다. 직원들은 0914-309를 안락사 방안으로 데려 들어왔다. 0914-309는 "낑낑" 소리를 내면서 끌려왔다. 직원이 0914-309의 두 앞다리를 잡은 후 수의사가 오른쪽 앞다리에 고무줄을 동여맸다. 다리에 케타민 성분의 마취제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주삿바늘을 보고 0914-309가 떨자 직원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2분 정도 지나자 0914-309는 마취가 돼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은 0914-309의 왼쪽 앞다리를 잡았다. 수의사는 동물용 안락사에 사용되는 T-61 약품을 투입했다. 그때부터 0914-309는 누구의 손에도 잡히지 않은 채 책상 위에 가만히 놓였다. 수의사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기도하며 0914-309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안락사된 개들의 목줄이 쓰레기통에 쌓였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T-61을 투입하고 2분 후, 수의사는 0914-309의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옮겨도 돼." 수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직원은 0914-309를 들어 올렸다. 0914-309는 아무런 힘도 없이 축 늘어진 상태로 다른 책상으로 옮겨졌다. 직원은 목줄을 떼서 버리고 0914-309를 사진 찍었다. 안락사됐다는 행정 작업을 위한 절차다. 0914-309는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냉동창고가 다 차면 소각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온다. 소각되고 나면 유기됐던 반려견은 마지막을 맞게 된다.


0914-309가 안락사되면서 A13 견사에도 빈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채워지는 데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직원들은 쉴 새 없이 신고받고 나가서 주인 모를 유기견들을 데려온다. 저편에서 안락사가 진행되는 동안 등록되지 않은 400마리의 유기견들과 신입방에 들어온 신입 유기견들은 계속해서 짖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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