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존폐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형제가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27년의 숙면을 깨고 다시 집행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폐지될 것인가. 재집행은 곧 사형을 존속시키겠단 정부의 의지를 표방한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아직 사형제가 필요할 만큼 위험하다고 인정하는 자기반성이다.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흉악범들이 등장하며 사형 재집행을 바라는 여론은 더욱 커졌다.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선 흉기 난동이 벌어지고 온라인상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예고글이 올라와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매스컴에선 전문가들이 나와 사형제 존폐에 대한 결정을 재촉하기도 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는 지난달 12일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형제를 집행하지도, 없애지도 않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해 "국제 사회의 눈치가 보이고 국민 여론도 걱정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비겁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반해 아직 존폐를 바로 결정하기엔 이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에 "우린 아직 사형제 폐지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본지는 3편에 걸쳐 사형제 재집행 여부에 대한 국민 여론을 확인하고, 실제 사형이 재집행됐을 때의 과정을 구성해봤다. 이어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 봤다.
법무부는 사형을 곧바로 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4개 교정기관(서울구치소, 부산구치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에 있는 사형집행시설의 환경을 정비했다. 또 연쇄살인범 유영철 등 미집행 사형수들을 사형 집행이 가능한 서울구치소로 이감시켰다. 이곳에는 강호순, 정두영 등도 복역하고 있다. 국민적 합의와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언제든지 사형이 가능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적 합의'가 모여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본지가 직접 국민 여론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10~13일 서울 시내 길거리와 온라인 공간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상자의 성별, 나이, 지역 등 조건은 불문했다. 길을 걷다가 아무나 붙잡고 사형 재집행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많은지를 확인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응답자 132명 중 약 80%에 가까운 101명(77.1%)이 "사형제를 다시 집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재집행 없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한 응답자는 28명(21.4%)이었다.
재집행을 찬성한 이유로는 "범죄를 억제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이 55명(54.5%), "흉악범들은 반드시 엄벌해야 하기 때문"이란 답이 45명(44.6%)이었다. "타인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똑같이 그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응보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기타의견도 있었다.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한 이유로는 "사형제를 대신할 대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 응답자가 18명(66.7%),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이라고 한 의견이 8명(29.6%)이었다. "실제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감소시키지 않고 그보단 교정교화, 교육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있었다.
사형제를 집행한다, 안 한다고 명확히 가르지 않고 절충안을 내놓은 응답자들도 있었다. "사형제를 재집행하되 수감성적을 고려해 재심의한 후 집행하자"라거나 "현장에서 체포된 흉악범 등 특수한 사례만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그랬다.
헌법재판소가 사형 재집행 여부를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을 곧 제시할 수도 있어 주목된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오는 26일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놓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다음 달 10일에 끝남에 따라, 그 전 마지막 선고일이 될 26일에 사형제에 대한 판단도 나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사형제를 규정한 형법 제41조와 제250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6일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있다. 헌재는 2022년 7월14일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 변론도 했다.
헌재가 이번에 사형제에 대한 판단을 내면 역대 3번째가 된다. 앞서 헌재는 1996년 재판관 7대2, 2010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도 헌재의 결정과 관계없이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형법에 새로운 조항으로 만들어 사형제와 병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미집행 사형수는 59명이다. 모두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우리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30일 23명에 대해 이뤄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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