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남자에서 여자 된 아들에 충격"…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배경 밝혀졌다

수정 2023.09.03 17:06입력 2023.09.02 17:43

머스크 전기 작가 “그는 충동적이고 막무가내”
성전환한 아들과의 절연으로 받은 상처도 영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미디어 트위터(현재 X)를 인수하게 된 배경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여기에는 아들과의 절연, 중독적인 승부욕 등 즉흥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작가 윌터 아이작슨이 기고한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대한 실제 이야기’라는 글이 실렸다. 아이작슨은 이달 12일 현지에서 출간될 머스크의 전기를 집필했다.


아이작슨은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밝히고 ‘X’로 이름을 바꾼 방식을 보면 그가 회사를 충동적이면서도 막무가내식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연이은 성공 이후 이른바 ‘게임 중독자’가 느끼는 것 같은 일종의 권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미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만둘 수 없는 중독 상태에 빠졌고, 더 큰 자극을 찾아 트위터를 인수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전쟁 상태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냐”는 질문에 “나는 원래 카지노 칩을 테이블로 다시 올려서 다음 단계의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머스크가 때맞춰 만기가 된 100억달러 규모의 스톡옵션을 행사한 기간과 일치한다. 당시 머스크는 “은행에 돈을 그냥 두는 게 싫었다”며 “어떤 상품이 마음에 드는지 자문해봤는데, 트위터라는 답이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이미지 출처=AFP 연합뉴스]

또 아이작슨은 “큰아들 하비에르 머스크가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자신과 절연하면서 받은 상처도 머스크에게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하비에르는 지난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히고, 법원에 소송 서류를 제출하고 성별을 여성으로 바꿨다. 이름도 어머니 성을 따른 비비언 제나 윌슨으로 변경하는 한편, 아버지와 절연했다. 머스크는 예전부터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아이작슨은 “머스크는 ‘하비에르가 로스앤젤레스(LA)의 진보적인 학교 크로스로즈 스쿨에서 이데올로기를 배웠고, 사회주의자를 넘어 완전히 공산주의자가 됐다’고 토로했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을 통해 이른바 ‘깨어 있는 정신 바이러스(Woke Mind Virus)’가 미국을 망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확고히 하는 계가가 됐다.


머스크는 “깨어 있는 정신 바이러스가 진보 정체성을 미국 사회에 강요하고 있다”며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문명은 절대 다른 행성으로 진출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또 정치적 올바름, 남녀평등 등을 강조하는 트위터의 기업 문화가 잘못됐다는 평소 지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머스크는 작년 4월 트위터를 총 440억달러(약 58조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머스크는 경영권 이전 하루 전인 작년 10월 26일 샌프란시스코의 트위터 본사에 들어서서 곳곳에 붙은 새 모양의 로고를 보고 “이 망할 새들,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머스크는 트위터의 CEO였던 파라그 아그라왈과 핵심 임원진들이 트위터를 망쳤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경영권 이전에 합의한 이튿날인 지난해 10월 27일 인수 일정을 기습적으로 앞당겨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바 있다.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배터리완전정복]①美 석유 재벌은 어떻게 이차전지 모태가 됐나
수정 2023.09.15 08:22입력 2023.09.02 07:00

1970년대 석유 파동이 대체 에너지 연구 촉발
엑슨 모빌 연구소서 리튬이온배터리 원리 발견

편집자주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보도합니다.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할아버지 2차 석유파동이 언제죠? 할아버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죠?" 2022년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장손 진성준이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던진 질문이다. 진 회장이 섬망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려는 술책이었다. 당시 기업인이라면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1, 2차 석유파동(오일 쇼크)의 정확한 연도를 모를 리 없었다. 쩔쩔매던 진 회장은 막내 손자 진도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1973년 1차 석유 파동과 1979년 2차 석유 파동으로 전 세계 석유 가격이 급등했다. 한국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석유 위기는 화석 연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석유를 마음대로 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촉발했다. 배터리도 그중 하나였다.


사진 = JTBC '재벌집 막내아들' 방송 캡처

1차 석유 파동은 제4차 중동 전쟁의 산물이다. 앞서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패했던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은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했다. 전쟁 초반에는 아랍 국가들이 승기를 잡았으나 이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전세가 역전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랍의 산유국들은 원유 가격 인상, 생산 감축, 이스라엘 지원 국가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그 여파로 석유 가격은 4배나 폭등했다. 전쟁 전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 고시 가격은 1974년 1월 11.6달러까지 치솟았다. 1차 석유 파동 때 미국인들은 자동차에 석유를 넣기 위해 주유소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동안 값싼 석유로 고속 성장했던 선진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1974년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릿수 물가 상승과 마이너스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겪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 1979년 이란이 다시 석유 수출을 중단하며 2차 석유파동이 찾아왔고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친 석유 위기를 거치며 석유에 대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관념은 근본부터 흔들렸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안정적인 원유 확보를 외교의 최우선에 두게 됐고 그 결과 국제 정세가 요동쳤다.


에너지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만약 석유를 쉽게 구할 수 없다면'이라는 두려움에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배터리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도 이때부터다.


배터리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석유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 배터리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여기에 오일 쇼크로 석유 위기를 경험한 거대 자본의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며 배터리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다. 현재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소형 가전부터 전기차, 항공에까지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도 이런 두려움과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했다.


"석유 위기 속에서 세워진 리튬이온배터리"

"리튬이온배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소통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음악을 듣고, 지식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휴대용 기기에 사용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또한 태양과 풍력으로부터 얻은 신재생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게 하고 장거리 운전이 가능한 전기차를 개발할 수 있게 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기반은 1970년대 석유 위기 기간 세워졌다"


2019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1922.7.25~2023.6.25), 스탠리 휘팅엄 뉴욕주립대 빙엄턴캠퍼스 교수(1941.12.22~), 요시노 아키라 일본 메이조대 교수(1948.1.30~) 등 3명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자 화학계는 환호했다. 반도체에 못지않게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고 있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역할을 고려하면 마땅히 받아야 할 이들이 받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석유 위기와 리튬이온배터리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스탠리 휘팅엄 교수가 리튬이온배터리의 초석을 놓은 연구 결과를 석유 기업 엑슨 모빌 연구원 시절에 내놓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스탠리 휘팅엄 교수. 출처:스웨덴 노벨위원회

휘팅엄 교수는 리튬이온배터리의 기본 작동 원리인 '인터칼레이션(삽입, intercalation) 층상 구조'를 발견한 인물이다. 이 연구 실적은 그가 석유 회사인 엑슨모빌의 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결과물이다. 석유를 대체할 기술을 역설적이게도 석유 회사에 있는 연구원이 발견한 것이다. 만약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오일쇼크가 없었다면 아마 그의 연구 결과는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영국 출신인 휘팅엄 교수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후 1972년 9월 에쏘(ESSO, 현재의 엑슨모빌)의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에쏘는 초전도체 연구에 집중했다. 초전도체란 전기 저항이 '0'에 가까운 물질이다. 이를 이용하면 에너지를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꿈의 물질'이라고 불린다.


초전도체를 연구하던 휘팅엄 교수는 특정 금속에서 격자 모양의 원자에 이온을 넣은 뒤 다시 이를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인터칼레이션이라고 불렀다. 휘팅엄 교수는 인터칼레이션 반응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바로 배터리 연구에 착수했다. 여러 가지 물질을 대상으로 실험하던 중 양극에 이황화티타늄을, 양극에 금속리튬을 적용해 본 결과 2.4볼트의 전압이 발생하는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이 발견을 즉각 회사에 보고했다. 약 한 달 뒤 본사에서 그를 불렀고 휘팅엄 교수는 이사회 소위원회에 출석해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그다음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엑슨의 기업연구소는 그에게 한 달 이내로 연구 결과를 발전시킬 팀을 구성할 것을 명령했다. 1973년 엑슨은 벨기에에 이와 관련한 첫 특허를 신청했다. 1973년 오일 쇼크가 발생하자 엑슨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1975년까지 수많은 특허 등록이 이뤄졌다.


석유 회사인 엑슨모빌이 석유의 경쟁 기술인 배터리에 이렇게 신속하고 과감하게 투자한 것은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 첫 번째는 1960년대 과학계에 널리 퍼졌던 석유 고갈론이고 두 번째는 앞서 얘기한 1차 석유 파동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석유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휘팅엄 교수는 2021년 최종현 학술원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에쏘는 1972년 석유화학 기업에서 벗어나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기로 결정하고 연료 전지 및 광전지 기업으로 성장하려고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벨연구소 규모의 과학기술 연구 개발 활동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초전도체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연구에서 리튬이온배터리가 등장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화석 연료를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를 연구하던 중에 리튬이온 배터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휘팅엄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엑손모빌은 석유 위기가 한창이던 1977년 열린 시카고 자동차 박람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리튬이온배터리를 전시할 수 있었다. 가로 10㎝, 세로 2.5㎝, 높이 15㎝ 크기의 이 배터리를 이용해 일주일 동안 오토바이 전조등을 켜고 끌 수 있었다. 이보다 앞서 1976년 엑슨모빌은 리튬이온배터리와 광전지로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어 고객사에게 사은품으로 주기도 했다.


엑슨모빌이 1977년 시카고 자동차 박람회에서 선보였던 리튬이온배터리. 출처: IEEE, 2012. 스탠리 휘팅엄 'History, Evolution, and Future Status of Energy Storage'

사실 석유 파동이 있기 전부터 석유 회사들은 석유 고갈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다. 석유 고갈론은 50~60년대부터 학자들과 석유 업계의 논쟁거리였다. 석유 고갈론의 불을 지핀 것은 또 다른 석유 회사인 셸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미국인 지질학자 킹 허버트(King Hubbert)였다. 그는 1956년 미국 내 석유 생산량을 추정한 결과 1970년 초에 생산량이 정점에 달하고 그 이후로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석유 정점론(Peak Oil)'을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곧바로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됐다. 석유 정점론은 각 유정의 석유 생산 속도를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져 당시로서는 매우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석유 생산의 정점을 예측한 모델을 '허버트 곡선(Hubbert's Curve)'이라고 부르며 아직도 경제학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3차 오일 쇼크에 대한 두려움과 전기차 빅뱅

공교롭게 최근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도 석유 가격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코로나19 이후 슬금슬금 오르던 기름값이 100달러를 넘어서자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2020년 초 중국에서 발견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국제 원유가는 곤두박질쳤다. 경제 활동이 얼어붙을 것으로 예측되자 선물 시장에서 원유는 한때 마이너스에 거래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전 배럴당 60달러 선을 기록하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020년 4월 -30달러대까지 뚝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수요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급망 병목 현상이 발생하자 원유 가격은 금세 회복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기름값이 순식간에 100달러를 넘어 130달러를 터치했다. 시장에선 3차 석유파동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기름값이 뛰자 소비자들은 전기차에 눈을 돌렸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차에 석유 가격마저 뛰어오르자 전기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0년 연간 222만356대였던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 477만8317대로 늘더니 2022년에는 802만555대(SNE리서치 기준)로 급격히 늘었다. 연간 증가율은 무려 115.2%를 기록했다. 2022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이 8063만1101대(LMC오토모티브 기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2년 팔린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전기차였던 셈이다.


전기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테슬라 이외에 기존 내연기관차들도 앞다투어 전기차 시장에 진출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급증했다.

▶인터칼레이션이란
인터칼레이션(intercalation)의 원래 뜻은 태양력에서 4년에 한번마다 하루씩 윤일을 두는 것을 의미했다. 영어에서 윤일을 인터캘러리 데이(intercalary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탠리 휘팅엄 교수는 층상 구조(layered structure)를 가진 물질의 층간에 분자, 원자와 이온이 삽입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인터칼레이션이라고 불렀다. 인터칼레이션은 양극과 음극의 두 전국 사이에서 리튬 이온과 전자가 이동하는 기본 원리가 된다. 충전 시에는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고, 반대로 방전 시에는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한다.

<참고도서>

-스탠리 휘팅엄, 'Long Hard Road: The Lithium-Ion Battery and the Electric Car'

-최종현학술원(스탠리 휘팅엄·거브랜더 시더·강기석·최장욱) '배터리의 미래'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음레협, 피프티피프티에 "데뷔 직후 정산 문제 삼는 건 착오"
수정 2023.09.02 11:34입력 2023.09.02 11:34

"피프티 사건, 국내 음악산업 전체 저해하는 행위"

K팝 걸그룹 역사상 최단기간에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해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렸던 4인조 걸그룹 피프티피프티를 둘러싼 전속계약 분쟁에 대해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이 "데뷔 직후 정산을 문제 삼는 것은 착오"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연투유TV에서 피프티피프티가 전속계약 효력 정지 신청 시 문제 삼았던 몇 가지 이슈에 대해 짚었다.

그룹 피프티피프티

그는 “음반·음원 선급금 투자는 매달 발생하는 음반, 음원 수익을 상계 처리하는 구조”라며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된 스타의 경우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투자가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신인의 경우 선급금 투자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80억 선급금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전홍준 대표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 경우 아티스트에게 고지를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음악산업 전체가 축소되고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무조건 적자로 시작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투자·손해·이익이 반복되다 보면 흑자가 발생하는 시점이 올 텐데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산을 문제 삼는 건 착오”라고 분석했다.

윤 회장은 멤버 측이 제기한 ‘건강관리 의무 위반’과 ‘활동 지원 미비’ 주장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표본이 없어 기준이 불명확하다”며 “ 표준계약서에서 한정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법적 다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소송이 남발되면 전속계약의 효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좋은 콘텐츠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상황이었고, 이것이 결국 K팝과 대중음악산업을 발전시키는 부분이었기에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피프티피프티는 지난해 11월 18일 첫 번째 앨범 ‘더 피프티’(THE FIFTY)를 내며 데뷔했다. 올 2월 24일 내놓은 싱글 앨범 ‘더 비기닝: 큐피드’의 타이틀 곡 ‘큐피드’(CUPID)는 지난 3월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 진입했다.


순항하던 중 피프티피프티는 지난 6월 19일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 멤버의 건강관리 의무 위반, 인적·물적 자원 지원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어트랙트와의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피프티피프티가 전속계약을 해지하려는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자동으로 다음기사가 보여집니다.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