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5시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은 노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50개 가까운 테이블에는 잘 차려입은 70~90대 노년층들이 앉아 왁자지껄하게 대화하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면서 서로 안주를 먹여 주기도 했다. 종업원도 손님과 어느 정도 친한지 옆에 앉아 일상 대화를 하며 주문을 받았다.
고물가 시대에 보기 힘든 7000원대 안주도 있지만, 무엇보다 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술을 즐길 수 있어 노년층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손님은 1만원을 내고 밴드 반주에 2곡을 부를 수 있다. 무대에 오른 노인들은 '사랑은 계절 따라' '조약돌 사랑' 등 트로트를 신청했다. 노래를 잘 부르면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흥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춤을 췄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종로의 '노래 술집' 풍경이다.
이 같은 노래 술집은 탑골공원 옆 송해길에서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까지 250여m 구간에 10여곳이 밀집해 있다. 청년들이 찾는 홍대 거리에 춤을 추며 술을 즐기는 '클럽'이 있다면 노년층에게는 노래 술집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을 찾은 주모씨(67·여)는 "요즘 노인들은 탑골공원에 있는 노래 술집서 모임을 가진다고 해 경기도 시흥에서 왔다"며 "친구들을 만나 노래를 들으면서 재밌게 놀다가 귀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즐거움 아래에서는 각종 신고와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엄연히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위생법은 업장에서 손님들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의 영업을 하려면 2종 유흥업소(단란주점)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곳 노래 술집들은 모두 일반음식점 신고만 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고발과 신고는 대부분 이들의 경쟁업체인 단란주점 업주들이 하고 있다. 인근 한 단란주점 업주는 "2020년 코로나19 유행 이후 유흥업소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을 계기로 노래 술집이 늘어났다"며 "일반음식점을 걸고 노래 주점을 운영하는 업장을 계속 신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거나 관할 구청의 행정처분을 받은 노래 술집도 있다. 검찰은 이달 초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K 노래 술집' 업주를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이에 앞서 3월 종로구청은 'C 노래 술집'에 대해 영업정지 2개월에 갈음하는 과징금 780만원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현재 탑골공원 쪽에서 영업하는 일반음식점 대상 신고나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일부 음식점들은 영업정지로 이어지는데 관련 부서가 단속을 진행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래 술집 업주들은 구청의 오래된 규제에 단란주점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곳은 2005년 결정 고시된 '종로 2·3가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돼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등 풍속업소의 신규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이 고시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계기로 주변 지역의 도시기능 증진, 토지이용의 합리화, 도시미관개선 등을 위해 마련됐다. 종로구는 2005년 당시와 비교해 별다른 환경 변화가 없어 해당 고시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래 술집 업주 10여명은 지난 17일 해당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여전히 도시 경관을 위해 필요한 규제인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노래 술집 업주들을 대리하는 김성훈 법무법인 루츠 변호사는 "과거 단란주점은 퇴폐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됐다"며 "단속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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