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경기둔화에 가계부채 급증…한은 고민↑
부진한 성장 고려하면 금리인하 고민해야
다만 유가상승, 부채증가는 금리인상 요인
최근 중국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국제유가와 가계부채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경기 둔화로 하반기 성장세 회복이 힘들어진 만큼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다시 치솟는 가계부채와 국제유가를 고려하면 오히려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은으로선 당분간 금리를 낮출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아시아경제가 21일 국내외 증권사 애널리스트, 경제연구소 연구원 등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당수 전문가는 앞으로 한은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중복답변)로 국제유가를 비롯한 물가 상승과 중국 경기 둔화, 가계부채 증가를 꼽았다. 한은의 최우선 관심사인 물가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계부채(8명)와 중국 성장률 둔화(7명)가 팽팽하게 뒤를 이었다.
우선 한은과 시장 안팎에선 최근 중국 경기 둔화가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실시한 설문에서는 같은 질문에 '중국 경기'를 선택한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었지만, 이번 설문에선 7명으로 늘었다. 한 달 새 중국 경기 둔화를 둘러싼 불안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각종 경기 부양책에도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0.3% 하락하면서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 업계 1위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지고, 또 다른 부동산 개발 업체인 에버그란데(헝다)는 미국에서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중국 경기 하방 압력이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우리 수출은 직격탄을 맞는다. 미·중 패권 갈등 여파로 '탈(脫)중국'이 어느 정도 진행되긴 했으나 여전히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중국발 악재가 이어지면서 '하반기 경제 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란 '상저하고' 전망도 힘을 잃고 있다. 일각에선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 1.4%조차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예상보다 부진한 중국 경제는 기준금리 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기둔화가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중국 경기 둔화폭이 확대되면 국내 수출 부진 등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중국 및 IT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부진하기 때문에 하반기 성장 동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불안한 물가는 한은이 고금리를 유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가파르게 올랐던 석유류 가격이 올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3.7%), 5월(3.3%), 6월(2.7%), 7월(2.3%) 둔화세를 보이고 있으나, 최근 다시 국제유가가 다시 크게 올라 물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지난달 초 배럴당 70달러 초반대였던 북해산 브렌트유는 현재 84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고, 미국 서부 텍사스원유(WTI)는 82달러대, 두바이유는 86달러대로 역시 많이 올랐다. 국제유가가 반등하면서 지난달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0.4% 올라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수입물가가 상승하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한은에서도 지난달 2.3%까지 내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달부터 점차 올라 연말에는 3% 안팎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리인하를 검토하기엔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률이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은 미국 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쳐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장기화를 지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 긴축이 이어지면 한은은 원·달러 환율 상승과 한미 금리차 때문에 금리를 내리기 더 어려워진다.
김선태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350원대를 넘어서 기조적 상승세를 지속한다면 불가피하게 금리인상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제유가의 방향이 미국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금통위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 회복으로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은의 금리인하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한 달 만에 6조원 늘면서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 되살아나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영향이다. 지난 4개월간 주담대 증가폭은 20조원에 육박한다.
한은 내부에서도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섣불리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서기 쉽지 않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 문제는 긴축 완화가 아닌 긴축 유지 또는 추가 긴축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금통위원 전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낮추면 집값 상승 기대가 더 커지면서 주담대 등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으니 당분간 금리인하를 검토하긴 힘들 것이란 설명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면서 중국 경기 둔화 상황과 가계부채 증가폭, 원·달러 환율 흐름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금리정책의 인플레이션 안정화 효과가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돼 추가 금리인상 요인은 현재로서는 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하면 가까운 시기에 정책 기조를 인하로 변경하기에도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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