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 결과 토대로 신병처리 검토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17일 검찰에 출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시간 반에 걸친 조사를 받고 나와 "(검찰이) 목표를 정해놓고 사건과 사실을 꿰맞춰 간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9시25분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인근에 도착한 이 대표는 15분 정도 준비해온 입장문을 낭독한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가 곧바로 조사를 받기 시작해 18일 오전 0시1분께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18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기하던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 대표는 대기 중이던 취재진에게 "객관적 사실에 의하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사안인데 (검찰이) 목표를 정해놓고 사실과 사건을 꿰맞춰 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조사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또 그는 "용도 변경을 조건으로 땅을 팔았으면서 용도 변경 전 가격으로 계약한 한국식품연구원이나 이를 승인한 국토부가 진짜 배임죄란 얘기를 해드렸다"고 말했다.
정청래·박찬대·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 조정식 사무총장, 김민석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를 포함한 의원 10여명이 이 대표가 조사를 마치고 나오길 기다렸다가 이 대표를 맞았다. 이 대표는 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는전날 오전 9시45분께 출석한 이 대표를 상대로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할 분량이 많았던 만큼 검찰은 티타임 등 별도의 절차 없이 곧바로 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에 대한 조사는 심야 조사 없이 전날 오후 9시께 마무리됐다. 이후 이 대표는 3시간 정도 조서를 열람했다.
검찰 관계자는 "효율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어느 정도 (조사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대한 조사는 최재순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 등 2명의 검사가 맡았고, 광주고검장 출신 박균택 변호사가(21기)가 이 대표의 변호인 자격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조사 중간 배달 음식으로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검찰은 300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이 대표는 미리 준비해간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 담긴 30쪽 분량의 진술서를 제출한 뒤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일부 내용 외에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진술서로 갈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공보국은 이 대표가 검찰 조사에 서면 진술서를 기초로 대응했고, 필요한 부분은 적극 설명했다고 밝혔다.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은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11만1265㎡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에 대한 개발 인허가 조건이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 등 민간업자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산지관리법에 따라 산지를 깎아 건물을 지을 땐 옹벽의 수직 높이가 15m를 넘으면 안 되지만, 당시 성남시가 용도변경을 허가하면서 백현동엔 높이 50여m의 '옹벽'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아시아디벨로퍼는 3000억원대 분양 수익을 거뒀다.
검찰은 2006년 선대위원장을 맡아 이 대표의 성남시장 선거를 돕는 등 이 대표와 그의 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각별한 정치적 교분을 갖고 있던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수감중)와 김 전 대표의 측근 김모씨가 2015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정진상 당시 정책비서관, 담당 성남시 공무원 등에게 청탁해 자연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된 용도 변경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대표는 호남향우회 등을 매개로 성남시청 소속 다수의 공무원들과도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이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청구한 김 전 대표의 측근 김씨의 구속영장에는 김씨가 이 대표와 정 전 실장과 친분이 있는 김 전 대표와 함께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인허가를 알선해준 대가로 정 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실제 35억원을 받은 혐의가 영장 범죄사실에 기재돼 있었다. 김씨는 지난 1998년 7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김병량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이후 용인의 부동산컨설팅 회사 대표로 일해왔다.
김씨가 김 전 대표와 함께 2013년 11월경 정 회장에게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와 사실상 성남시청 2인자로 통하던 정 전 실장과의 각별한 친분을 과시하며 성남시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해, 정 대표로부터 백현동 사업 관련 각종 인허가 사항을 해결해 주면 사업 성공 시 막대한 배당이익을 받을 수 있는 지분을 받기로 약속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공영개발이 돼야 할 곳인데 공사의 참여를 배제시켜 정당하게 확보할 개발 이익을 포기하고 개발 사업자에 귀속되게 한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며 "'1원의 사익도 추구한 적이 없다'는 (이 대표 발언) 부분은 배임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9년 2월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에서 김 전 대표 측근인 사업가 김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대표가 '검사 사칭 사건' 관련 재판에 나와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고, 이 대표의 부탁을 받은 김씨가 실제 2019년 2월 14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선서를 한 뒤 실제는 그런 협의나 분위기가 있었는지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검사 사칭 사건 당시 김병량과 KBS 측 사이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 위해 최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자는 협의 또는 그러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 대표가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추가 소환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검찰은 이날 조사 내용을 토대로 이 대표의 신병처리 문제를 결정할 방침이다.
백현동 의혹 관련 혐의만으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아니면 수원지검이 수사 중인 '불법 대북송금' 관련 혐의와 묶어서 청구할지, 국회 회기 중에 청구할지 아니면 회기를 피해 청구할지 등 검찰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가 다른 사건으로 검찰에 추가 소환될 가능성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의 일부인 ‘428억 약정설’을 계속 수사하고 있고, 수원지검은 ‘쌍방울 그룹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의 개입 또는 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도 계속 수사 중이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이 대표와 ‘정자동 호텔 개발 특혜’ 의혹 간 관련성 여부를 살피고 있다.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위례·대장동 개발비리, 성남FC 불법 후원금, "고(故) 김문기씨를 몰랐다"는 발언 등에 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동시에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검찰 출석에 앞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면 제 발로 출석해서 심사받겠다. 저를 위한 국회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불체포특권을 행사하지 않고 영장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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