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지갑 닫자, 기업들 가격 인하 경쟁
7월 CPI 2년 반 만에 하락
"일본식 장기불황 빠질 수도"
#중국 베이징에 160개 매장을 둔 패스트푸드 체인점 난청샹. 이곳은 매일 아침 죽과 새콤하고 매운 국, 우유 등 메뉴 세 개로 구성된 조식 뷔페를 인당 단돈 3위안(한화 약 550원)에 제공한다. 손자와 함께 난청샹을 찾아 아침 식사를 한 71세의 가오 이 씨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저렴하고 좋은 선택지가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지속되진 않지만 새롭고 좋은 거래들은 항상 있다"며 "그것들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디플레이션(물가하락)' 공포가 번지는 가운데 급기야 500원대 아침 식사를 파는 식당이 등장하는 등 외식업체들이 가격 인하 경쟁에 한창이라고 10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이 전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리자, 손님을 끌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리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식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인 시샤오예는 최근 메뉴 가격을 인하했다. 10위안(약 1800원)짜리 메뉴도 내놨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KFC의 중국 운영사인 염 차이나 또한 햄버거와 스낵, 음료 세트 일부를 19.9위안(약 3600원)까지 인하키로 했다. KFC의 대표 햄버거 메뉴 중 하나인 징거버거 세트의 국내 판매가(7800원)와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이 같은 중국 외식업체들의 가격 인하 경쟁은 중국의 디플레이션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염 차이나의 조이 왓 최고경영자(CEO)는 "판매량은 돌아왔지만, 인당 소비는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광둥성식품안전촉진연합의 주 단펑 부대표는 "소비자들에게 비용 대비 가치가 높은 선택권을 더 많이 제공하는 (최근의) 할인 전략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각국은 불길이 잡히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반등할까 긍긍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물가 하락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0.3% 하락했다. 중국의 월간 CPI가 하락한 건 2년 5개월 만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 내수 위축, 수출 감소 등이 겹친 결과다. 중국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 판매는 6월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에 그쳐 넉 달 만에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지난해 연말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사실상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베이징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근무하는 33세의 동 씨는 "주택담보대출이 있고 아이도 키워야 한다"며 "(지출을 위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지출에)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신은 "경제학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봉쇄 해제 후에도 즉각적인 소비지출의 증가는 없었다"며 "임금·연금은 그대로에, 고용시장 불확실성이 높다. 지출 욕구는 제한적이고, 경제도 간신히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중국 경제성장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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