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상 혐의로 벌금형 약식명령
정식 재판 청구…재판부 “벌금 선고유예 부당하지 않다”
패션쇼에서 쓰러지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60대 시니어 모델이 과실치상으로 벌금형 선고유예를 판결받았다.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했으나 항소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A(69)씨는 2021년 12월 패션쇼 당시 “무대 위 뒤편에서 대기하라”는 감독의 지시에 무대 뒤쪽 가장자리로 이동, 또 다른 모델 B(69)씨와 함께 서 있었다.
당시 무대 바닥의 높이는 약 1.4m였고, A씨가 서 있던 곳은 난간이나 유도등도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다른 모델들의 공연을 보던 A씨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A씨에게 팔을 잡힌 B씨도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B씨는 팔과 머리, 얼굴 등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골절과 무릎 타박상, 치아 손상 등 약 8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당했다.
이 일로 인해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은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A씨는 재판에서 “내 행위는 긴급피난에 해당하며, 내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발생 사이에는 타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안전장치가 없는 좁은 무대 뒤편에서 발을 헛디디는 등 실수로 떨어질 경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접촉으로 인해 옆에 있던 B씨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다만 피해자 역시 피고인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과실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이를 참작해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선고유예는 유죄는 인정되나 선고를 유예하는 것으로, 기간이 지나면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기소유예보다는 무거운 처벌이지만 집행유예보다는 가벼운 처벌이다. 다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한하며,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
판결에 불복한 A씨는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본 B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며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벌금형 선고유예도 가볍다는 주장을 폈다.
항소심을 맡은 법원 형사2부(이영진 부장판사)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B씨가 정지 상태로 앞을 보고 서 있는 모습만 확인되는 점, 그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고, B씨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실이 없다”는 B씨의 진술을 토대로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처벌을 받은 적이 없고, 사건이 일어난 경위에 어느 정도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피해자가 입은 상해 정도가 가볍지 않고, 현재까지도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죄책을 부인하고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 사정 등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