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5선 아빠 국회의원 인터뷰
육아 경험 토대로 저출산 대책 추진
스웨덴 집권당 남녀 동수 공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올레 토렐(Olle Thorell·5선) 의원은 3선 의원이던 2018년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썼다. 마흔 여덟에 늦둥이를 얻은만큼 아들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올레 의원은 최근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첫 9개월은 의사인 아내가 육아휴직을 썼고, 이후 9개월은 내가 아들과 함께했다"면서 "직접 육아휴직을 통해 아들을 키우는 동안 아이 돌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고 전했다.
국회의원들의 육아휴직은 입법에 반영되고 있다. 직접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 미흡한 점을 파악, 제도를 뜯어고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빠 의무 육아휴직이다.
양성평등 넘어 '성중립' 사회된 스웨덴, 아빠도 육아휴직 의무화
사진=사회민주당의 올레 토렐(Olle Thorell·5선) 의원이 자신이 직접 만든 홍보물을 소개하고 있다. 5선인 올레 의원은 개인 보좌관 없이 선거 홍보물도 직접 만든다.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부모 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남성이 휴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의무가 아닌 권고였던 탓이다. 이에 정부는 1990년부터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스웨덴 육아휴직 기간은 총 480일인데, 부모가 각각 240일씩 쓸 수 있다. 이 중 150일은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있지만, 양도가 불가능한 90일은 안 쓰면 없어진다. 이같은 방식으로 스웨덴 아빠들은 3개월간 육아휴직을 얻게된 셈이다.
올레 의원은 "스웨덴 의회가 마련한 법과 현실 사이 괴리감이 적은 이유는 의회가 스웨덴 사회를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이 법을 만드는 '입법자'이기도 하지만 해당 법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대표'인 덕분에 탁상공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스웨덴 의회에서는 육아휴직을 하는 기간 '대체 의원'이 휴직 의원의 업무를 대신한다. 스웨덴은 정당마다 현역 국회의원이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경우, 업무를 대신 볼 수 있도록 하는 대체 의원 리스트가 있다. 올레 의원이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외교위원회에서 일하던 대체 의원이 9개월간 업무를 대신 봤고, 이후에는 다시 본인이 있는 자리인 외교위로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21대 국회에서 임기 중 출산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역대 3번째 현역의원 출산)은 육아휴직은 물론, 출산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남녀교육평등법에 따라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이거나,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가 있는 남녀 근로자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최대 1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근로자'가 아닌 탓에 육아휴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국회의원도 '애 키우기 힘들다' 느껴봐야…합계출산율, 스웨덴 1.52명 vs 한국 0.78명
이같은 차이는 출산율에 반영됐다.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을 추이를 보면 2018년 1.75명, 2020년 1.66명으로 하락하다 2021년 1.6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1.52명으로 감소하긴 했지만, 한국의 출산율 0.78명과 비교했을 땐 여전히 두 배 정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의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스웨덴에서는 평일 낮 공원에서 유모차를 끈 아빠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마시며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을 일컬어 '라떼파파(lattepappa)'라고 부른다. 아빠 의무 육아휴직이 갖고 온 신풍속도다. 이는 올레 의원처럼 국회의원들이 직접 육아 활동에 관여하면서 법을 개정, 발전시켜온 부분이 크다. 올레 의원은 "(육아휴직 경험을 토대로) 스웨덴 부모수당 보험도 개선하고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등 저출산 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올레 의원이 직접 육아에 나선 배경에는 특권 의식이 없는 정치 문화가 있다. 국회의원이 '엘리트 집단'이 아닌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올레 의원은 "다른 국가에서 국회의원은 '특권 계급'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349명의 국회의원이 전체 스웨덴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본다"면서 "국회의원을 특권층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스웨덴 국회의원 이력을 살펴보면, 의회 입성 전 청소부부터 운전사, 의사, 선생님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갖고있다. 올레 의원도 교사 출신이다. 교직에 있을 때 인종 차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한 이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다양한 세대·계층의 '대표자'일 뿐이라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층이 아니다"라며"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대리인으로서 어떤 법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 의뢰해 행정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의회 여성 비율 46%…사민당, 공천 절반은 여성
양성평등이 일찍부터 자리잡은 스웨덴은 '젠더뉴트럴(gender neutral·성 중립)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스웨덴 의회에서 여성 비율은 46%이고, 2021년 기준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은 95% 수준이다. 40년 넘게 집권하며 현재의 '스웨덴식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사민당이 양성평등에 힘을 쏟은 결과다.
스웨덴은 국회의원 349명이 모두 비례대표로 선출되는데, 제1당(107석, 30.6%)인 사민당은 공천 명단을 만들 때 성별을 번갈아 구성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 1번을 남성에게 공천하면, 2번은 여성, 3번은 남성 등의 방식으로 공천하는 방식이다. 올레 의원은 "사민당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출현, 각계각층을 대변하며 계급 평등·양성 평등을 추구해왔다"면서 "모든 명단을 만들 때 항상 50%는 여성이 있도록 구성한다. 위원장 등 수장을 추천할 때도 항상 남녀 2인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양성평등 공천 덕분에 의회내 성평등이 가능했고이는 젠더뉴트럴 사회로 이어졌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0.815)은 아이슬란드(0.912)와 노르웨이(0.879), 핀란드(0.863), 뉴질랜드(0.856)에 이어 세계 5위 성평등 수준을 보였다. 반면,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0.680을 기록, 전체 146개 국가 중 105위를 기록했다. 올레 의원은 "젊은 부모는 물론 이혼해서 혼자 자녀를 키우면서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남녀 똑같이 육아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면서 "국회가 모범이 돼 양성평등을 실천하면 이후 기업도 따라오게 된다"고 전했다.
사진=사회민주당의 올레 토렐(Olle Thorell·5선) 의원올레 의원은 "사민당은 정치 전문가를 원하지 않는다. 평등사회를 추구하며 비례성, 대표성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성평등에 소극적이며 정치 스펙트럼이 정반대인 상대 당에 대해서는 "우리 당과 이념이 다르지만, 그들 역시 스웨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라면서 "국민이 뽑은 대표자이기 때문에 나와 생각은 달라도 존중한다. 다만, 내 아들을 양성평등이 확대된 스웨덴에서 키우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른 정당들과 잘 협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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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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