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군수뇌부와 불화 지속…잇단 패전 비판
푸틴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
무정부상태 빠졌던 러…취약해진 푸틴정권
우크라이나 전쟁 주요 전선에서 러시아군 선봉에 서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갑자기 총부리를 돌려 모스크바로 진격한다며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프리고진이 하루 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정부의 타협안에 합의해 벨라루스로 이동하면서 대대적인 반란은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비슷한 군사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죠.
이번 프리고진의 거병 이유에 대해 각종 설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구축한 절대권력에 도전하진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보다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지휘 실패로 위기에 몰려있는 러시아 내 2인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자리를 둘러싸고 최측근들끼리 알력이 심해지면서 발생한 우발적인 반란으로 풀이되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좀처럼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한 내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푸틴 정권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면서 앞으로 전쟁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바그너그룹 수장인 프리고진은 이날 공개한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 내에서의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을 다시 철수하도록 지시했다"며 "그들은 바그너 그룹을 해체하려고 했고, 우리는 23일 정의의 행진을 시작했다. 하루 만에 모스크바에서 거의 200㎞ 내까지 왔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모스크바로 진격 중이던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병사들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하고,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이날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푸틴 대통령과의 합의 하에 루카셴코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협상했다"며 "양측은 러시아 내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발표했죠.
전날 반란소식에 긴급 대국민 연설을 발표하며 반란군을 "처벌"하겠다고 했던 푸틴 대통령도 합의안을 받아들이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은 취소될 것이다.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죠.
이로서 러시아 전역을 뒤흔들었던 바그너그룹의 반란은 하루만에 일단락된 모습입니다. 이들은 러시아 군부가 자신들의 캠프로 폭격을 해 수많은 용병들이 사망했다며 23일 거병을 한 뒤, 모스크바서 약 500km 떨어진 로스토프나노두의 군사시설을 점거하며 모스크바로 진격하겠다고 발표했었죠. 미국은 물론 서방 정보당국들도 갑작스런 러시아 내 반란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당장은 프리고진이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반란은 가라앉는 모양새지만, 앞으로 언제, 어디서 이런 군사반란이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만큼 푸틴 정권의 불안감도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푸틴의 2인자 자리 놓고 격돌…국방장관 교체카드 꺼낼까
이번 반란의 성격을 두고 수많은 설들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군사반란이 푸틴 정권의 전복을 노린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그너그룹 병력 수가 수만명이 된다고 해도 주요 중화기를 보유하지 못한데다 러시아 정부가 자금과 물자를 동결하면 개인 용병기업이 수만명의 병력을 유지할 기반이 없다"며 "프리고진은 전쟁 이후 러시아 정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계속된 졸전에 각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2인자 자리를 놓고 러시아 군부 내에서 알력이 심해진 것이 이번 반란의 배경이란 해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프리고진은 그동안 러시아 국방부의 잘못된 전략을 지적하며 국방장관 교체를 강력히 주장해왔는데요.
쇼이구 장관은 군인 출신이 아니지만, 탁월한 행정력을 인정받아 푸틴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이후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강력한 2인자로 불려왔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까지 지난 10여년간 러시아군 내 군부개혁을 주도해왔는데요.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갖가지 약점이 노출되면서 빨리 교체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죠.
반란군 막을 예비전력 전무…딜레마에 빠진 푸틴 정권
비록 반란군의 모스크바 진격은 가까스로 막았다고 해도 푸틴 정권은 이번 반란으로 그동안 유지해온 권위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쟁수행이 계속 가능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이번 반란군의 진격을 막을 예비전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고, 이들이 너무 손쉽게 모스크바 인근까지 북진한 것은 러시아 내부 안보의 취약점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입니다. 미국전쟁연구소(ISW)는 "프리고진의 부대가 진격하는 동안 러시아 정부는 지역 방위군과 경찰병력 등을 동원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이들이 교전했다는 내용의 보고나 동영상 등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유사시 러시아 내부를 방어할 전력이 거의 없음을 보여준 것이며 바그너 그룹은 프리고진이 계속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면, 모스크바 외곽까지 도달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죠.
특히 푸틴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반란군이 되돌아간 것도 푸틴 대통령의 권위에 큰 타격을 줬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20년 이상 철권통치 기간 동안 최측근의 반란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번 반란이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주목됩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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