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13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다.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180%이상 뛰어오른 상태다. 같은 날 테슬라는 역대 최장인 13거래일 연속 랠리를 이어갔다. 대표 빅테크들이 연일 '최초' '최장' 새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는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러한 랠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수 있다는 경계감도 확인된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의 주가는 전장 대비 3.90% 상승한 주당 410.22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의 시총은 종가 기준으로도 1조달러를 돌파했다. 1993년 엔비디아 창업 후 30년 만이다. 이는 지난달 30일 장중 한때 시총 1조달러를 터치한 이후 약 2주 만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이날 종가는 앞서 기록한 장중 최고치 419.39달러보다는 낮다.
반도체 기업 중 시총 1조를 돌파한 기업은 엔비디아가 최초다. 뉴욕증시를 통틀어서도 시총 1조클럽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알파벳, 아마존 등 소수에 불과하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챗GPT를 비롯한 AI 열풍에 힘입어 올 들어서만 180%이상 치솟았다. AI 개발에 이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부가 반도체를 전 세계 시장에 90%이상 공급 중인 엔비디아는 깜짝 실적에 장밋빛 기대감까지 겹치면서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2분기 매출 전망으로 월가 예상치를 50%이상 상회하는 110억달러를 제시, 이러한 랠리에 한층 불을 붙이기도 했다. JP모건, 에버코어ISI 등 월가 투자은행들은 이미 엔비디아의 목표 주가를 최대 500달러까지 상향한 상태다.
같은 날 전기차기업 테슬라도 역대 최장기 랠리 기록을 갈아치웠다. 테슬라의 주가는 전장 대비 3.55% 오른 주당 258.71달러에 마감했다. 무려 13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이전 최장기 랠리는 2010년 6월 기록한 12거래일 연속 상승장이었다. 최근 테슬라의 랠리 배경에는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과의 고속충전소 제휴 소식이 존재한다. 테슬라의 충전소 슈퍼차저가 미 전기차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매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300슬라(주가 300달러)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투자회사 웨드부시는 최근 테슬라의 목표주가로 300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연초까지만해도 전기차 경쟁 심화, 가격 인하 등으로 인해 주가가 휘청였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 주들도 최근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이날 0.83% 상승한 1만3573.32에 거래를 마감했다. 전날 기록한 13개월 만의 최고치도 또 한번 갈아치웠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폭이 완화하고 금리 동결 기대감이 커지면서 기술주들의 랠리가 재확인됐다.
다만 치솟은 주가로 인한 경계감도 서서히 확산하는 모습이다. 특히 월가에서는 랠리를 나타낸 주식들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일부 빅테크주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우려로 지적되고 있다.
전날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총 3조달러에 근접한 애플의 경우, 애널리스트들로부터 투자의견 하향 진단이 우세하다. UBS는 전날 늦게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했다. UBS는 "(주당)순이익의 29배에서 거래되는 주가가 비싸다"며 "올해 하반기 1~2%가량 둔화할 것으로 보이는 아이폰 판매량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평가했다. 직후 블룸버그통신은 자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애플에 대한 매수 투자의견이 67%로 2020년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UBS의 투자의견 하향 여파 등이 반영되면서 이날 애플의 주가는 약보합으로 마감했다.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크리스토퍼 아일맨은 이날 CNBC에 출연해 "월스트리트가 AI를 과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랠리가 엔비디아를 비롯한 몇개의 메가캡 기술주에 집중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어 "시장이 얼마나 협소한지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기술, 특히 빅테크가 지나치게 상승한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짚었다.
아스와트 다모란 뉴욕대학교 경영학 교수 역시 CNBC 클로징벨에서 "엔비디아가 현 주가를 정당화하려면 전체 AI시장을 몰살시키거나 지배해야 한다. 이러한 베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서 "상승 여력이 너무 적게 남아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TIG의 조나단 크린스키 기술전략가는 보고서를 통해 기술주, 성장주의 랠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나스닥 선물이 200일 평균 이동선보다 22% 높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올해 패턴은 지난해와 거의 반대"라고 진단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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