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이쑤시개 씻어 다시 쓴 최규하
골키퍼로 전국대학축구대회 준결승 오른 전두환
육사 방송 마이크로 노래 불러 기합받은 노태우
러시아서 귀머거리 새 요리 맛있게 먹은 김영삼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대통령에게 쌀밥 내줬다가 벌금 낸 식당(上)>에 이어
*최규하 대통령은 한국 헌정 사상 정당에 관여하지 않은 유일한 통수권자다.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을 시작으로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국제회의에서 탁월한 영어 실력을 발휘해 외무부 장관으로 고속 승진했고, 4년간 국무총리로 재임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는 육영수 여사가 발족한 자선단체 양지회에서 총무로 활동했다.
구본관 가구*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꽁치와 콩자반, 국수를 자주 먹었다. 그를 오랫동안 보필한 권영민 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청와대 검식관이라는 양반이 대통령께서 뭘 많이 드셨느냐고 물어서 국수하고 콩자반하고 꽁치 같은 거를 좋아하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허구한 날 콩자반하고 꽁치하고 국수가 나오는 거예요. 재임 기간 평생 먹을 냉면, 국수를 다 먹었어요."
*최규하 대통령은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쏘겠냐"며 경호원 위호를 자주 거부했다. 비서진과 단출하게 다니는 일이 많았다. 홍기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단골 한복집에 경호원들이 함께 가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겨 들어오지 말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는 여성지와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1979년 12월 초순에 김치 서른 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난 뒤 서교동 자택에서 항상 연탄을 사용했다. 오일 파동으로 탄광을 찾았을 때 고생하는 광부들 앞에서 연탄보일러를 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난방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다소 추운 집에서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스크랩했다. 아침 일곱 시면 여지없이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건넸다. 플라스틱 이쑤시개를 씻어 다시 사용하는 등 작은 것 하나까지 절약 생활을 실천했다.
상춘재 가구*최규하 대통령은 직원들이 휴지통에 버린 종이를 다시 꺼내 메모지로 쓰라며 나눠준 적이 있다. 그는 담배도 제일 값이 싼 '한산도'만 피웠다. 이마저 가격이 오르자 아예 끊어버렸다.
*최규하 대통령은 노인성 치매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을 앓은 홍기 여사를 극진히 간호했다. 밥을 일일이 먹여주고, 수첩에 혈압과 혈당 수치를 적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돈을 벌면서 대구공업고교를 다녔다. 당시 유일한 낙은 축구였다. 남다른 소질이 있었는데 경기 때마다 골키퍼로 뛰었다. 육사 시절에도 골키퍼로 맹활약하며 학교를 전국대학축구대회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군인 시절에도 축구를 향한 관심과 열정은 상당했다. 다음은 박종환 전 축구감독의 회고다. "전두환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우리가 서울시청 축구단을 창단했을 때예요. 선수들을 1공수여단에서 훈련하게 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공수여단장으로 계신 곳이었어요." 전 대통령은 사비를 털어 회식 자리를 마련하는 등 선수들을 알뜰히 챙겼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창단해 스포츠 시대를 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담당 요리사는 신라호텔 주방에서 일하다 10·26 사태 다음 날 아침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청와대로 출근해야 했다. 부담스럽고 자유롭지 못할 듯해 거부하고 싶었지만, 위에서 내린 결정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그는 전 대통령이 육식을 좋아해 갈비나 너비아니 구이를 자주 상에 올렸다. "쇠고기를 재료로 한다면 너비아니라든가 갈비라든가 이렇게 하고, 갈비탕과 육개장을 한 번씩 끓일 때도 있고, 닭요리를 하자면 영계백숙이라든가 닭 다리 튀김 등을 하면서 보통 보름, 열흘 간격으로 드리지요."
전두환 대통령 시기 제작된 본차이나 식기세트*전두환 대통령 가족이 금가루 뿌린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시중에서 청와대에 납품한다는 업체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담당 요리사는 고기, 채소 등을 사기 위해 주로 청와대 근처 정육점이나 동대문 광장 시장을 이용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된장이 들어간 음식, 특히 아욱국을 좋아했다. 담당 요리사였던 이근배 씨는 "어릴 적에 많이 드시지 않았나 싶다"며 "몸이 좀 으스스하다 싶을 때는 갱시기국을 찾으셨다"고 회고했다. 갱시기국은 콩나물, 멸치, 김치, 밥을 넣고 푹 끓인 경상도 토속 음식이다. 콩나물국과 비슷하다. 노 대통형은 이 밖에도 장떡, 빈대떡 등 어렸을 때 먹던 음식들을 좋아했다. 반면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은 싫어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애창곡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멋지게 불렀고, 수준급 퉁소 연주를 뽐냈다. 퉁소는 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여읜 부친의 유품이다. 그는 휘파람도 잘 불었다. 숲속에서 소리를 내면 산새가 날아왔다고.
*노태우 대통령은 온순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친구들이 빵을 달라고 하면 순순히 내줬다. 동기들끼리 싸움이 빈번했던 단체생활에서도 단 한 번 다툼을 일으키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얌전했던 그는 육사에서 딱 한 번 사고를 쳤다. 생도들이 순번을 정해 방송 스피커로 전달 사항을 알렸는데, 자신의 차례가 되자 '베사메 무초'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이 사건으로 노 대통령은 기합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의 퉁소*노태우 대통령은 군 지휘관 시절 부대가를 직접 작사·작곡했다. 럭비 등 운동도 잘했다. 육사 시절 100m를 11초에 뛰어 육상부 가입을 권유받았다. 그는 동기들과 럭비팀이 생기면 들어가겠다고 약속한 상태여서 고사했다. 럭비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터치다운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
*수수한 이미지를 추구했던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의 애창곡으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아침 이슬'을 꼽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외신에 자신이 '뿔난 사람'이라고 보도되자 외국 기자에게 뿔이 있는지 머리를 만져보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새벽에 조깅을 했다. 건강 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30분 정도 뛰면서 주요 정책을 결심하고 복잡한 국정을 정리했다. 대표적 예로는 1993년 8월 12일 발표한 금융실명제 실시가 손꼽힌다. 새벽에 평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달리며 긴장을 해소했다. 조깅이 몰입의 방법이자 결단의 의식이었던 셈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학창 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을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정치인이 된 뒤 일정이 불규칙해지자 아무 때나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4㎞ 이상을 달렸다. 1980년대 초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는 자택의 좁은 마당에 트랙을 설치하고 뛰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조깅화*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 날 새벽에도 조깅을 했다. 그는 비서진이 새 조깅화를 준비해서 가져오자 버럭 화를 냈다. 국민에게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흙탕물이 지워지지 않은 자신의 오래된 조깅화를 신은 뒤에야 녹지원을 뛰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조깅을 하며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두 사람 간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도 있었다. 김 대통령은 함께 조깅을 하기 전 클린턴 대통령이 빠르게 잘 달린다는 보고를 받고 긴장했다. 하지만 실제 조깅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꽤 힘겨워했다. 김 대통령은 뜀을 멈추고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아량을 베풀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 고수답게 힐러리 클린턴 여사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조깅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니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많이 뛰어요. 그러면 나중에 무릎을 다치기 쉽습니다." 훗날 김 대통령이 백악관을 찾아 클린턴 대통령과 조깅을 하다 보니 코스 바닥이 고무 타이어로 바뀌어 있었다. 김 대통령은 힐러리 여사가 조언을 반영한 것 같아 내심 기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조깅을 중단했다.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수영과 배드민턴으로 취미를 바꿨다. 겨울에도 날씨가 영상으로 올라가면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경기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철거한 옛 총독부 건물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석*김영삼 대통령은 평소 형식과 논리를 따지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종종 실언하곤 했다. 예컨대 '우루과이 라운드'를 '우루과이 사태', '리쿠르트'를 '요구르트'라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왕창왕창 잘 먹어 '왕창스키'라는 별명이 붙었다. 식성도 까다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담당 요리사인 이근배 씨는 "어린 손녀들이 음식이 짜거나 달다고 투정하면, 짜면 물 부어서 먹고 싱거우면 소금을 넣어서 먹으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해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회담했다. 옐친 대통령은 별장에서 귀머거리 새를 대접했다. 귀가 밝고 빨라 사냥하기 힘든 야생조다. 러시아 경호원들은 며칠을 허탕 치다 김 대통령이 도착한 당일이 되어서야 사냥에 성공해 만찬 요리로 내놓았다. 김 대통령은 이국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그 덕에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질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관저 서예탁자*김영삼 대통령은 생선류를 좋아했다. 한 마리를 사면 회를 치고 나머지로 국을 끓였다. 그는 생선 부위 중에서도 어두육미, 말 그대로 머리를 좋아했다. 이근배 씨는 "처음엔 잘 몰라서 생선 몸통을 갖다 드렸는데, 서운하셨던지 '대구 머리 어디 갔노'라고 하셨어요"라고 회고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였다. 담당 요리사였던 문문술 씨는 다음과 같이 추억했다. "민어 매운탕을 끓였는데, 사실 민어는 뼈와 붙어 있는 머리 부분의 살이 맛있습니다. 국그릇이 작아 민어 머리의 살만 드렸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문국장!' 부르시더니 '살덩어리 다 어디 갔노? 네가 다 먹었나?' 하셨죠."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칼국수를 먹고 갔다. 탁구 선수 현정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로 식사 초대를 두 번이나 하셨는데, 두 번 다 칼국수를 주셔서 무척 실망했습니다. 국제대회에 나갔다가 돌아온 선수들한테 칼국수가 뭡니까?" 김 대통령은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밀 음식 많이 먹기를 부탁해 칼국수를 자주 주문했다. 당시 밀 생산 농민들은 판매처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1994년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빨리 먹다가 뜨거워서 "핫(Hot)! 핫!"을 연발했다. 그 소리에 김영삼 대통령을 포함한 주위는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써서 선물한 '대도무문' 붓글씨*김영삼 대통령은 영양사들이 심각한 영양 불균형을 걱정할 만큼 칼국수를 고집했다. 취임 초 수육이 곁들여 나오자 화를 내기도 했다. 청렴결백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였다. 청와대 주방에서는 칼국수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했다. 한 번에 130인분을 만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
참고 자료 : 박병호·반보현·박연재 등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지음·발행처 고래미디어 '대통령의 밥상(2012)', 이강래 지음·발행처 형설라이프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2022)', 박영규 지음·발행처 웅진지식하우스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2022)', 노무현재단 지음·발행처 한걸음더 '내 마음속 대통령(2009)', 박영규 지음·발행처 웅진지식하우스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2022)', 이명박 지음·발행처 알에이치코리아 '대통령의 시간 2008-2013(2015)'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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